[이석기 내란선동 유죄] 대법원 “막연하고 단순한 의견교환은 내란 음모 아니다”

입력 2015-01-22 17:35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상고심에서 내란음모죄가 성립하기 위한 구체적 요건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1990년대 말 내란죄와 음모죄의 성립 요건에 대해 따로 설명한 대법원 판례는 있지만 ‘내란음모’에 대한 판례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내란을 실행하겠다는 확정적인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한 내란음모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막연한 합의, 단순 의견교환은 내란음모 아니다”=대법원은 ‘음모’의 범위를 엄격하게 해석했다. 음모의 법률적 의미는 ‘실행 착수 이전에 2인 이상의 사람 사이에 성립한 범죄 실행 합의’다. 합의 자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당사자들의 의사 표시다. 대법원은 “적어도 내란음모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공격 대상과 목표가 설정돼 있고, 실행계획에 있어서 주요 사항의 윤곽을 공통적으로 인식할 정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격 대상과 목표, 시기와 실행 방법 등이 없다면 ‘내란’에 관한 음모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이 전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 판단과 같은 맥락이다. 2심을 맡았던 서울고법은 이 전 의원의 2013년 5월 회합 당시 발언이 ‘한반도 내 전쟁 발발 시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구체적 준비 방안 마련을 지시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 전 의원 발언만으로 회합 참석자들이 내란을 음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참석자들이 회합에서 논의됐던 폭력적 방안을 실행하기 위한 추가 논의나 준비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법원은 음모의 범위를 폭넓게 해석할 경우 생길 문제점을 지적했다. 대법원은 “범죄를 실행하기로 막연하게 합의한 경우나 특정 범죄에 대해 단순히 의견을 교환한 경우까지 처벌한다면 국민 기본권인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대법원은 “내란음모는 실질적인 위험성을 수반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실질적 위험성은 폭력행위의 유형, 내용의 구체성, 계획된 실행시기와 근접성, 합의 당사자 수와 그들의 관계, 합의 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도록 했다.

◇이석기 발언은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동’=대법원은 내란선동의 범위는 내란음모와 달리 폭넓게 해석했다. 내란선동에 대해 “내란 실행 시기와 장소, 대상과 방식, 역할 분담 등 주요 내용이 선동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될 필요는 없다”며 “선동 상대방에게 내란 결의를 유발하거나 증대시킬 위험성이 인정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이 전 의원 발언을 내란선동으로 보기에는 충분하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이 전 의원은 당시 회합 참석자 130여명 이상이 조직적으로 전국적 범위에서 통신·유류·철도·가스 등 주요 국가기간시설을 파괴하는 행위 등을 준비하라고 촉구했다. 대법원은 “(이 전 의원의 발언 내용은) 다수인이 결합해 폭행·협박하는 것으로 내란죄 성립에 필요한 ‘한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동’에 해당한다”고 봤다. 실제 전쟁 상황에서 실행에 옮겨질 경우 대한민국 정부의 전쟁 대응기능이 무력화돼 체제가 전복될 수 있는 수준의 발언이라는 설명이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