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고문실태 폭로한 ‘관타나모 일기’ 발매 하루 만에 베스트셀러 진입

입력 2015-01-22 14:29

쿠바 미군 해군기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온갖 고문을 당한 후 13년 째 갇혀 있는 수감자의 육필 고문 증언록이 출간 하루 만에 아마존 100대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했다.

모하메드 울드 슬라이(44)가 쓴 이 화제작은 22일 오전 현재 아마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89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회고록, 인권, 안보 분야에서 각각 판매 1위를 차지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세계 최대 서적유통체인인 반즈앤노블에서도 톱 50위 안에 들었다.

서아프리카 모리타니 출신으로 전기 엔지니어인 슬라이는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한지 얼마 안되는 그해 11월 9일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택에서 기관원 2명에 의해 연행됐다. 그는 걱정스러운 눈길의 어머니에게 “염려마시라”고 안심시켰으나 그것이 어머니와 마지막이 됐고 어머니는 끝내 아들을 보지 못한 채 2013년 3월 숨을 거뒀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 온라인은 책 일부를 발췌해 전재하면서 그가 요르단,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관타나모로 이송됐고 미 정보기관이 그를 거물로 지목하면서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미 국방장관이 2003년 8월 그에 대한 ‘특별 심문’을 직접 승인했다고 전했다. 성적 학대, 잠 안재우기, 극한의 추위, 가상 납치, 보트를 이용한 가상 처형, 어머니를 체포해 관타나모로 데려오겠다는 위협 등이 그것이다.

발췌록에 따르면 그는 여간수 2명으로부터 성고문까지 당했고 이슬람 신자인 그가 고문 내내 기도문을 읊조리자 고문실 밖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심문관이 들어와 “빌어먹을 기도를 멈춰! 미국인과 섹스를 하면서 기도를 해? 이런 위선자 같으니라고”라며 모욕을 주기도 했다. 수 주 동안 계속된 고문 끝에 결국 그는 거짓 자백을 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불고 나서야 TV, 컴퓨터가 딸리고 화초까지 기를 수 있는 ‘안락한’ 특실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언젠가 출간하리라는 생각으로 2005년 여름에 460쪽 분량의 관타나모 일기를 집필, 당국의 사전검열과 엄격한 편집을 거쳐 10년 만에 세상에 책으로 내놓게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서평에서 “슬라이와 같은 처지의 수백 명이 ‘마녀사냥’을 당해 세계 곳곳의 미 중앙정보국(CIA) 비밀 수감시설에서 정식 재판도 없이 고문을 당했다”면서 “관타나모 일기는 안보를 위해서라면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거나 고문하는 것도 불가피하다는 안보제일주의의 부수적 피해에 관한 가장 심오한 진술”이라고 말했다.

슬라이는 2010년 미국 지방법원에서 알카에다 테러행위에 직접 연관됐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석방 명령을 받았지만, 법무부의 항소로 아직 수감 중이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