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당시 영장없는 구금 불법 아니다? 억울한 옥살이 설훈 의원에 국가배상 0원

입력 2015-01-21 09:22

유신헌법 반대 운동을 하다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기소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새정치민주연합 설훈(62·사진) 의원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도 국가배상을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됐다.

서울고법 민사12부(부장판사 김기정)는 설 의원과 그의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억4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던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21일 밝혔다. 설 의원은 1977년 4월 ‘10월 유신이란 미명의 폭력주의는 민주주의의 가냘픈 숨결마저 끊고 말았다’로 시작되는 구국선언문을 작성해 배포하는 등 유신 반대활동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6월과 자격정지 2년6월의 확정 판결을 받고 790일간 복역했다. 그는 2013년 6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지난해 9월 1심은 “국가가 위헌·무효인 긴급조치 9호를 발령하고 이를 근거로 설 의원을 영장 없이 불법 체포해 유죄 판결을 선고한 것은 위법하다”며 “설 의원과 그의 가족이 입은 정신적 고통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지난해 10월 말 긴급조치가 시행되던 당시 영장 없이 체포·구금한 행위는 불법 행위가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설 의원에 대한 항소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는 국가의 배상책임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대법원 판결의 논리를 그대로 따왔다. 재판부는 “영장 없이 체포·구금해 수사를 진행하고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고 하더라도 당시에 긴급조치가 위헌·무효임이 선언되지 않았던 이상 이를 불법행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는 사정만으로는 이전에 복역했던 것이 곧바로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것이라고 볼 수 없고, 설령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 등 위법 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행위와 유죄 판결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