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아시안컵 8강전이 열린 1996년 12월 16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은 2대 1로 앞선 채 후반전에 돌입했다.팽팽한 공방 속에서 전반 11분 김도훈의 선제골과 전반 34분 신태용의 추가골로 주도권을 잡은 만큼 승리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후반전의 양상은 전반전과 180도 바뀌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하프타임 10분간 라커룸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10여분마다 한 번씩 골문을 열어줬다.
후반 6분 아지지의 동점골을 시작으로 후반 11분, 21분, 38분, 44분 알리 다에이에게 연달아 골을 얻어맞았다. 추격의 의지는 없었다. 경기 종료를 알린 주심의 호각이 울린 순간 전광판에는 2대 6이라는 스코어가 찍혀 있었다. 그렇게 8강에서 탈락했다. 우리나라 축구사에서 씻을 수 없는 오명으로 남은 ‘두바이 대참사’였다.
‘두바이 대참사’는 이란과의 아시안컵 악연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우리나라는 UAE 대회부터 15년간 다섯 차례 연속으로 아시안컵 8강에서 이란을 만났다. 전적은 3승2패. 호각세였다. 2000년 레바논 대회, 2007년 동남아 4개국 대회, 2011년 카타르 대회에서는 이란을 따돌렸지만 UAE 대회와 2004년 중국 대회에서는 이란을 넘지 못하고 8강에서 분루를 삼켰다.
문제는 서로를 넘어선 뒤부터였다. 우리나라와 이란은 8강에서 결승전과 같은 혈투를 벌이고 4강에서 번번이 무너졌다. 서로를 상대로 전력을 기울이면서 다음 상대에게 쏟을 힘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 사이 일본은 세 차례나 정상을 밟았다.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에도 한 차례씩 우승의 기회가 돌아갔다.
우리나라와 이란은 2015 호주아시안컵 8강에서 서로를 피했다. 우리나라는 A조에서, 이란은 C조에서 나란히 3전 전승을 질주하며 순위표 최상단에 자리했다. 우리나라는 8강에서 B조 2위 우즈베키스탄과, 이란은 D조 2위 이라크와 대결한다.
문제는 4강이다. 우리나라와 이란이 8강에서 나란히 승리할 경우 오는 26일 호주 시드니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4강전에서 만난다. 지난 다섯 번의 8강 승부와 마찬가지로 다음 경기를 기약하지 않고 혈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승리해도 체력을 소진한 채 결승전에 임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개최국으로 출전해 정상까지 밟았던 1960년 대회로부터 55년 만에 우승을 노린다. 우승의 길목에서 번번이 시련을 안겼던 이란은 호주아시안컵에서도 난관일 수밖에 없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호주아시안컵 Day12] “제발 그만! 우리도 이제 우승 좀 하자”… 설마 이번에도 이란?
입력 2015-01-20 19:34 수정 2015-01-20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