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겨울 폭풍이 몰아친 지난 15일(현지시간) 이라크 북부 신자르산 부근 야지디족 난민촌에 대형 트럭 석 대가 도착했다. 트럭에는 어렵게 겨울을 나는 소수민족 야디지족을 위한 담요와 매트리스, 위생용품, 식량 같은 구호물품이 실려 있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지난해 8월 야지디족이 주로 사는 신자르 지역을 포위한 뒤 이들을 납치하고 살해했다. 당시 IS의 포위와 위협에서 간신히 도망친 야지디족 수천명은 이곳 난민촌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왔다. 이런 난민들에게 구호 트럭을 보낸 단체는 다름 아닌 스위스에 본부를 둔 아시리아계 기독교 구호단체 ARI였다.
여러 국제 구호단체가 야지디족 난민을 돕고 있지만 ARI가 내민 작은 온정의 손길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전인 1915년 벌어진 ‘아르메니아 대학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오스만 제국은 아르메니아인이 적국 러시아에 정보를 빼돌린다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을 자행하거나 시리아 사막으로 추방해 150만명이 희생됐다.
오스만 제국은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함께 기독교를 믿는 아시리아계 소수민족도 같은 방법으로 탄압했고, 이 과정에서 수만명의 인명피해가 났다.
이들과 야지디족 사이의 뜻밖의 인연은 이 비극에서 피어났다. 독일에 본부가 있는 야지디족 계열 매체 야지디프레스는 “100년 전 사막으로 쫓겨난 아시리아 난민 2만명이 야지디족이 사는 신자르산에 왔고 야지디족은 이들을 따뜻하게 맞아 보호했다”고 설명했다. 혈통은 다르지만 소수민족의 설움에 동병상련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오스만 제국이 야지디족 족장 헤노 셰로에게 협박 편지를 보냈지만 그는 “나와 우리 부족이 오스만의 총알에 모두 죽은 뒤에야 이들을 학살할 수 있을 것”이라며 편지를 찢고 오스만 제국에 저항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야지디프레스는 “100년전 그 기독교인들이 신자르 산에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엔 난민이 아니라 도움을 주러 왔다”고 보도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100년만의 보은’…아시리아계 NGO, 이라크 북부 야지디족에 온정
입력 2015-01-20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