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공통점이 있지. 동생들 앞에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중략) 그래야 우리의 엄마들이 그 많은 아이들을 키우는데 조금이라도 수월했겠지.”(1장의 ‘앤에게’ 중)
고(故) 박완서(1931∼2011) 선생이 타계하기 일주일 전쯤일 게다. 어머니가 사는 경기도 구리시 아치울 마을을 평소처럼 들른 맏딸 호원숙(60·사진)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들려줬다. 기력이 쇠해 책을 읽을 수 없어서다. 자신처럼 맏이였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읽던 호씨는 순간 눈물이 솟았다. 얼마 남지 않았을 거라는 예감 때문이었을까.
4주기(22일)를 맞아 수필가인 호씨가 어머니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산문집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달 출판사)를 냈다. 2006년 첫 산문집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 이후 두 번째다. 표지에 실린, 그가 그린 맨드라미 색연필 그림이 곱다. 어머니의 오랜 팬이 지금도 잊지 않고 보낸다는 꽃이다.
2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어머니라는 산이 너무 컸다. ‘나는 나’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에 대해 얘기할 때 그는 종종 목이 메는 듯 했다.
산문집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의 추억을 담은 1장 ‘그전’, 타계 후 아치울 마을에서 살면서 어머니를 회고한 2장 ‘그후 ’, 작가 자신에 대해 쓴 3장 ‘고요한 자유’로 이뤄져 있다.
문학동네에선 박 선생의 기존 산문집을 묶어 새로 펴냈다. 1977년 출간된 첫 산문집 ‘쑥스러운 고백’에서 1990년 펴낸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까지 총 7권이다. 절판된 책들을 다시 엮는 작업에 관여했던 호씨는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그 시대를 열심히 사셨다. 내 어머니가 아니라 작가로서 어머니로서 훌륭히 지낸 걸, 가깝게 산 사람으로서 남기고 싶었다”고 출간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어머니의 우리 말 사랑을 전하기도 했다. 박 선생은 삶과 생활이 담긴 낱말을 고르기 위해 국어대사전을 끼고 살았다. 1권도 제대로 들기 힘든 국어대사전 2권이 너덜너덜해질 정도였다고 한다.
호씨는 70∼90년대에 쓴 어머니의 산문이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는 걸 누차 강조했다. 그는 “어머니는 세상의 불평등성에 대해 염려하고, 성장위주 경제논리에 대해 경고했다”며 “지금 조간신문에 실려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박완서 맏딸 호원숙씨 산문집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펴내
입력 2015-01-20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