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말 '길로틴' 받아 '작두'로 충성한 정 안행부장관 언어 섬뜩한 까닭

입력 2015-01-20 15:38 수정 2015-01-20 15:46

[전정희의 스몰토크] 1. 작두. 말이나 소의 먹이를 써는 연장. 대체로 기름하고 두툼한 나무토막 위에 긴 칼날을 달고 그 사이에 짚이나 풀 따위를 넣어 자루를 손으로 누르거나 발판을 발로 디뎌 가며 썰게 되어 있다.
길로틴. 기요틴의 잘못. 프랑스혁명 때에 의원인 기요탱이 발명한 사형 집행기구. 두 개의 기둥이 나란히 서 있고 그 사이에 비스듬한 모양의 날이 있는 도끼가 달려 있어서, 그 아래에 사형수를 엎드리게 한 다음 사형 집행자가 끈을 잡아당기면 그 도끼가 밑으로 떨어져서 사형수의 목이 잘리도록 장치되어 있다. 두 단어는 국어사전의 정의다.

2. 오늘의 이슈는 ‘연말정산’과 관련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의 긴급기자회견이었다. ‘13월의 세금폭탄’을 우려한 봉급쟁이들이 귀를 쫑긋해 들었으나 이렇다할 내용이 없어 실망이 컸다는 반응이다.

3. 이날 청와대 국무회의에 앞서 국무위원 간 티타임을 가졌는데 연말정산 문제가 거론됐다. 박근혜 대통령도 참여한 자리였다.
박 대통령이 최 부총리에게 “오늘 잘 하셨느냐”하고 묻자 최 부총리가 “여러 혼란이 있었는데 설명을 잘 드렸고 전체적으로 (세금부담이) 좀 늘어난 면도 있지만 고소득층한테 더 걷어서 저소득층한테 돌려주려고 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국민이) 이해가 잘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4. 이 자리에서 규제 단두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이 “단두대의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래서 제가 쉽게 표현해 대한민국 방식으로 하면 작두다, 통째로 올려놓고 작두로 자른다고 설명했다”고 말을 꺼냈다.
이에대해 박 대통령은 “영어로는 길로틴(guillotine) 이라고 (한다)”며 “외국에서 제도가 처음 시작된 것으로 그만큼 뿌리가 뽑히지 않은 규제들이 있으니까 확실하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걸 이렇게 표현하든 저렇게 표현하든 개혁하겠다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강한 의지를 담고 표현한 것이라고 봐야한다”고 받았다.

5. ‘나쁜 언어란 불완전한 사고다’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는 ‘일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규제개혁을 얘기하면서 섬뜩한 느낌의 ‘기요틴’, ‘작두’ 등이 튀어 나오니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뒤엉키게 된다. 그 언어 수용자는 규제개혁을 단호하게 혁파하겠다는 전달자의 메시지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이 시큰한 느낌을 먼저 받는다. 이럴 경우 메시지의 본질은 제대로 수용되기 어렵다.
소쉬르의 언어철학에 따르면 말의 차이에 따라 세계가 달라진다고 했다. 우리에게 눈(雪)은 함박눈, 가랑눈, 싸락눈 등 몇 가지지만 에스키모에게 눈은 실로 다양하다.

또 문법적으로 호응하느냐의 문제도 있다. 눈과 싸락눈은 호응한다. 오른쪽이 있으면 왼쪽이 있고, 위가 있으면 아래가 있고, 남이 있으면 북이 있는 것도 호응한다.
그런데 규제개혁과 작두는 호응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사용자의 언어 자체만 놓고 봤을 때 사용자의 생각이 불완전하다고 느껴진다. 정책 실천의 절박함에서 나온 강렬한 언어구사이나 대통령과 장관이 쓰는 어휘치곤 불편하고 불완전하다. 보편성을 지나치게 벗어났기 때문이다.

6. 특히 정 장관은 대통령의 말을 좀더 쉽게 해석해 전달한답시고 ‘작두’를 거론 했는데 그게 더 오금 저리게 한다. 작두는 외국어 ‘기요틴’과 또 달라서 단지 여물을 쓰는 생산적 단어로 받아들여지기보다 ‘무속인의 작두’, ‘기요틴 연장 선상에서의 작두’ 등으로 이미지가 형성된다. 의병을 처단하던 일경의 작두가 떠올려 진다.
따라서 정 장관은 국무위원으로서의 립서비스는 탁월했으나 국민에겐 불완전한 언어 구사로 겁박의 느낌을 갖게 했다. 작두를 듣고 나니 자꾸 내 뒷골을 만지게 된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