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독일 작곡가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情景) 중 ‘트로이 메라이(꿈)’를 연주하자 카메라 셔터가 일제히 터졌다. 정 감독은 “촬영이 안 끝나신 것 같은데 한 곡 더 들려드리겠다”며 슈만의 또 다른 곡 ‘아라베스크’를 연주했다.
19일 정 감독이 10여분에 걸쳐 피아노를 친 곳은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이 아니라 서울시향 연습실이었다. 청중은 서울시향의 2015년도 신년계획을 취재하기 위해 모여든 기자들이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마에스트로가 ‘꿈’을 이야기하며 직접 들려주는 피아노곡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 흔치 않다.
그럼에도 그의 연주는 감동보다는 불편함을 줬다. 정 감독은 연주에 앞서 “(나는) 서울시와 계약이 돼 있지 않은 상태”라며 서울시와의 계약 문제에 1시간 동안 진행된 간담회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그는 자신과 재계약을 하려면 서울시가 서울시향 전용 콘서트홀을 건립하고, 시향 운영에 적정 예산을 배정하는 등 지속적인 지원을 담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향의 4월 미국 투어 일정에 대해서도 “미국에 못가면 시향이 창피를 당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서울시가 지난해 관련 예산을 축소하면서 투어 일정이 현재 불투명한 상태다.
클래식계에선 정 감독이 서울시와의 재계약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자간담회를 ‘이용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 감독은 지난해 말 재계약을 앞두고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박 대표는 사퇴했고 이사회는 정 감독 계약을 1년 연장키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 감독이 10주년을 맞은 서울시향의 신년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본인 얘기에 너무 치중했다는 것이다. 클래식 관계자는 “정 감독이 재계약 조건을 걸고 서울시를 압박하는 모양새가 됐다”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현장기자] 서울시향 정명훈 예술감독의 독특한 신년 기자간담회… 공개적으로 서울시 압박
입력 2015-01-19 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