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현모씨는 운전을 하다 차선 그리는 작업을 하던 지모씨를 친 뒤 달아났다. 전형적인 ‘뺑소니’였다. 그런데 사건은 불기소 처분 중 하나인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됐다. 뺑소니가 별 것 아닌 사건이 된 배경에는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 은평경찰서 김모(49) 경위가 있었다.
현씨는 지인으로부터 김 경위에게 돈을 주면 사건을 무마할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다. 김 경위는 수년간 ‘뺑소니 처리반장’으로 근무한 전문가였다. 김 경위가 일러준 계좌에 150만원을 건넨 뒤 ‘마법’같은 일이 벌어졌다. 김 경위는 현씨가 뺑소니를 모두 시인한 진술서를 수사기록에 첨부하지 않았다. 대신 진술서에 ‘피해자에 연락처와 이름을 알려주었음’ 이라고 적어 넣었다. 사고 피해자에게 연락처를 남기고 후속조치를 한 것으로 위장한 것이다. 이어 검찰에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김 경위의 ‘일탈’은 이것뿐만 아니다. 그는 합의금 명목으로 가해자에게 직접 돈을 받아 가로채기도 했다. 같은 해 5월 행인을 치고 달아난 김모씨를 조사하면서 “피해자와 합의를 하면 뺑소니사건으로 처벌 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 뒤 차명계좌로 100만원을 받았다. 김씨 역시 뺑소니가 아닌 단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 사건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반대로 단순 교통사고를 부풀려 사고를 낸 운전자들을 협박한 뒤 돈을 받아내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 단순 접촉사고를 낸 오모씨에게 “사고 후 후진하던 중 뒤에 있던 취객이 부딪혔다. 합의하지 않으면 뺑소니로 처벌된다”고 말해 2300만원을 받은 뒤 가로챘다.
김 경위는 이 같은 방식으로 최소 5년간 사건 관련자 10여 명으로부터 총 8400여만원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서부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오성우)는 사기 및 부정처사 후 수뢰, 변조사문서행사 등 6개 혐의로 기소된 김 경위에게 징역 2년6월과 벌금 300만원, 추징금 150만원을 선고했다고 19일 밝혔다.
임지훈 기자 zeitgeist@kmib.co.kr
뺑소니 전문 경찰관의 뒷거래…뒷돈 받고 사건 조작했다 덜미
입력 2015-01-19 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