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2013년 5월 운전 중 행인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은 채 달아나 뺑소니 혐의로 신고 됐다. 서울의 한 경찰서 교통조사계에 불려 나온 그는 담당 조사관인 김모(49) 경위로부터 하나의 제안을 받는다. 사고 피해자와 합의를 잘만 하면 뺑소니 혐의로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김 경위는 ‘신고한 시민에게 포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하지만 모두 거짓이었다. 알려준 계좌는 김 경위의 차명계좌였다. A씨가 포상금 명목으로 입금한 100만원은 김 경위의 뒷주머니로 들어갔다. A씨의 뺑소니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은 피해자와 합의를 한 덕분이 아니고 김 경위가 교통사고 내용과 피해 규모 등을 축소했기 때문이었다.
수년간 ‘뺑소니 사고 처리반장’으로 근무한 김 경위는 이런 방식으로 최소 5년간 사건 관련자 10여 명으로부터 8400여만원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뒷돈을 받으려고 뺑소니 사고 관련 진술서를 변조해 사건을 은폐하고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사건을 종결하는가 하면, 인명피해가 없는 사고 가해자에게는 ‘당신 때문에 사람이 다쳤으니 합의하지 않으면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고 거짓말을 해 1000만원을 받아 빼돌리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21일 검찰에 체포돼 구속기소됐다. 감찰에 착수한 경찰은 지난달 초 김 경위를 파면했다. 서울서부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오성우)는 김 경위에 대해 사기 및 부정처사 후 수뢰 등 총 6개 혐의를 적용해 징역 2년6월과 벌금 300만원, 추징금 150만원을 선고했다고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경찰공무원으로서 고도의 청렴성이 요구됨에도 사건을 부정하게 축소처리하고 뇌물을 요구해 받는 등 범행 수법이 파렴치하고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판시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뺑소니 전담 경찰이 사건 조작… 가해자 속여 뒷돈까지 챙겨
입력 2015-01-19 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