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는 여학생들이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조은빈(15)양이 손에 쥐고 있던 빨간 실타래를 반 친구인 남은채양에게 던졌다. 실타래는 날아가면서 두 아이를 연결해줬다. 조양은 줄을 마주잡은 친구에게 “펭귄처럼 생겨서, 귀여워서 내가 먼저 말 걸었었지? 2학년 올라가도 친하게 지내자”라고 했다. 남양이 “내가 먼저 (인사)했는데?”라고 대꾸하자 교실에선 ‘까르르’ 웃음이 넘쳤다.
남양은 다른 학생에게도 실타래를 던지며 덕담을 건넸다. 조양에게서 시작된 실은 아이들 19명을 모두 이어줬다. 아이들이 실을 팽팽하게 당기자 누가 누구와 어떻게 연결됐는지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결국 한 묶음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지난달 19일 서울 은평구 예일여중 1학년 3반에서 있었던 ‘십오통활(十五通活)’의 한 장면이다. 십오통활은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가 개발한 집단상담 프로그램이다. ‘십오(15)’는 ‘중2병’으로도 불리는 격렬한 사춘기의 정점을 의미한다. ‘통활’은 사춘기 아이들과 ‘통’하기 위한 ‘활’동 중심의 상담이라는 뜻이다. 예일여중은 지난해 자유학기제의 하나로 십오통활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날은 지난 4개월 동안 진행된 프로그램의 마지막 날이었다.
상담대 15세상담연구소 박순주 연구원은 실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65억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있어. 그 중에서 우리들은 지금 보는 것처럼 인연의 끈으로 묶인 소중한 사람들이야. 다만 평소에는 보이지 않을 뿐이지. 인연을 오래오래 이어가도록 하자.” 오세인양은 “지난 4개월 동안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공부보다 중요한 삶의 지혜를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십오통활은 위기학생뿐만 아니라 보통 아이들이 자아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도록 설계됐다. 박 연구원은 “먼저 ‘나’를 찾고 ‘너’를 이해하는 동시에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꿈’을 찾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15주 과정인 십오통활의 가장 큰 특징은 수업시간 내내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장애물 건너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장애물 건너기는 미식축구와 흡사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아이들은 먼저 꿈·목표를 적은 메모지를 칠판에 붙인다. 그리고 한 명씩 교실 맨 끝에서 자신의 메모지를 잡기 위해 뛴다. 친구들은 이를 저지하려고 몸싸움을 벌인다.
채선기 15세상담연구소 책임연구원은 18일 “감정 표현에 서툰 남학생들이 메모지를 쟁취하고 눈물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역경을 극복하고 목표를 이루는 성취감, 그 과정에서 겪은 고통 등이 내부에 쌓인 감정을 외부로 분출시킨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예일여중 이정은 교사는 “십오통활 프로그램이 끝나고 아이들이 부쩍 큰 느낌이다. 학생들이 감정을 표현하고 본인이 직접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을 배웠다”고 평가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한국상담대 르포] “15세는 ‘중2병’이 아닌 어른으로 가는 길목”
입력 2015-01-18 2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