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이 떨렸다. 그러나 잠시였다. 질문이 끝나자마자 답변이 시작됐다. 거침이 없었다. 가벼운 손동작이 곁들여졌다. 농담도 잊지 않았다. ‘교수’ ‘샌님’ ‘정치 초년병’이라는 단어는 과거로 흘러가 있었다. 정치적 ‘촌티’는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공동대표다.
안 전 대표는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국민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당은 변화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는 절박감이 없다”며 “이대로 가면 차기 대선에서 집권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의 책임도 있다”는 표현도 함께였다.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서도 “정치에 대한 실망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반증”이라며 “우선 나를 포함해서 정치권 모두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멘토가 누구냐’고 묻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서울 노원병 주민들”이라고 했다. 정치 입문 이후 2년여 만에 처음으로 감기에 걸렸다는 안 전 대표에게 직설적으로 ‘대권’부터 따져 물었다.
-차기 대선에 출마할 생각인가.
“지금까지 한 인터뷰 중에서 가장 스트레이트한 질문이다(웃음). 사실 지금은 대선뿐만 아니라 총선을 이야기할 단계도 아니다. 대선 출마는 국민이 판단할 문제다. 당이 워낙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변화와 혁신에 집중해야할 때다.”
-대통령이 되려면 ‘권력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철수의 정치’를 해왔다는 평가가 있다. 이번엔 완주할 자신이 있는가.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도움이 된다면 자기를 버릴 줄 아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의를 위해서 나 개인을 희생해도 좋다. 나름대로 희생과 헌신을 한 것인데 이를 조롱하고 폄하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이번엔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우직하게 나아가다 보면 ‘철수의 정치’ 같은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관심 갖는 현안은 무엇인가.
“경제문제다.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점은 우리나라가 이 상태 그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40년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질 수 있겠다는 절박감이 있다.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우리의 기간이 3~4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경제 이야기를 한다. 사실은 경제는 정치 문제다.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정치밖에 없다. 그래서 경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 이 시대의 정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일반 대중은 정치에 대해서 굉장히 실망을 하고 있다. 일반 대중은 ‘지금 정치는 정치인을 위한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 달라고 한다. 그것이 새정치에 대한 염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민을 위한 정치는 함께 잘 사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정치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제일 존경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래 정치했다. 정치인 안철수는 언제까지 정치하나.
“김 전 대통령도 연세 드신 다음에 대통령이 된 것을 보면 사람마다 하늘에서 생각하는 쓰임새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직업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열심히 살다보니까 직업을 바꿔야 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의사하다가 창업하게 되고 창업하다가 다시 학교에 가고 다시 정치를 하게 됐다. 하늘에서 나를 이렇게 쓰시려고 그런 것이구나 생각한다. 운명론을 받아들이는 편이다. 뭐가 되느냐는 목표보다는 하고 있는 일자체가 중요하다. 지금 현재 충실히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12일 기자회견이 불통이라고 평가받는데.
“소통 자체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 말을 들어서 그 사람들에게 원하는 생각을 들려주는 것이 소통이다. 어제 기자회견도 여전히 하고 싶은 말만 해서 국민의 정서와 차이가 나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불통이라고 하는 것 같다. 물론 어제 같은 기자간담회 회견이라도 이제부터 활발하게 했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해서 미리 받지 않은 질문에도 자유롭게 답하고 해야 하지 않겠나.”
-안 전 대표도 대중보단 소위 높은 사람들과만 소통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대중과 만나는 자리가 많다. 지역구인 노원병에서는 한달에 최소 한번씩 노원콘서트를 연다. 거기에서 여러 그룹 사람들 만난다. 또 어린이집이 서울에서 노원구에 제일 많다. 원장님들이 굉장히 많은데 지역 사무소에서 같이 만나서 자주 간담회를 한다. 고등학교를 찾아가서 아이들과 끊임없이 이야기 한다. 제가 예전부터 그래왔다. 회사 다닐 때도 일반 대중과 소통하면서 V3백신을 무료 공급했고, 대학 교수를 할 때도 대학원 학생만 가르친 게 아니라 일부러 학부과정도 맡아서 가르치고 청춘 콘서트도 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계속하고 있다.”
-열풍 또는 대망론이 나오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평가해달라.
“물론 정말로 훌륭한 분이다. 유엔 사무총장 자리를 그것도 연임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반 총장을 차기 대선 후보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현재 정치가 제대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결과가 투영된 것이라 본다. 현재 정치권은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새정치연합 이야기를 해보자. 당의 상태는 어떠한가.
“지금 우리 당은 심각한 위기상황에 빠져 있다. 지금 당장 변화와 혁신을 통해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집권 가능성이 없다. 고민 끝에 연초 미국에서 열린 국제가전제품박람회(CES)에 갔다. 한국 오피니언 리더들이 많이 왔다. 그들은 ‘요즘 다른 일이 없어서 편하게 왔느냐’고 묻더라. 전당대회 예비경선 중이라고 했더니 ‘무슨 전당대회냐’라고 되묻더라. 우리 당 사정을 전혀 알지 못했다. 바로 이게 진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이 멀어져 있었다. 아니 없었다. 당 대표 후보들이 ‘변화하겠다’ ‘혁신하겠다’는 선언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당직 인사와 공천을 어떻게 하겠다고 구체적인 공약들을 내놓고 경쟁을 해야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외부로 시선을 돌리기보다 내부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혁신·변화해야 한다. 지금은 그게 답이라고 본다. 괜히 외부로 눈을 돌려선 안 된다.”
-당 대표 후보 3명을 평가해달라. 특히 약점을.
“약점을 말하기는 그렇다. 세 후보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故) 김근태 전 상임고문을 계승했다. 그런 정신을 계승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비전을 선보여야 한다. 각자가 생각하는 공약을 내면서 치열한 혁신경쟁의 장을 만들고, 각자가 계승하고 있는 정신을 어떻게 더 발전시킬 수 있는지를 놓고 비전경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의원은 고정 지지층이 탄탄하고, 박지원 의원은 누구보다도 정치 경험이 풍부하다. 이인영 의원은 세 후보 가운데는 가장 젊다. 나이 오십이 젊다고 할 수는 없지만(웃음).”
-탈당한 정동영 전 상임고문이 새정치연합이 보수 우경화됐다고 비판했는데. 안 전 대표의 책임도 있지 않나.
“보수고 진보고 중도고 이런 것보다 사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 정치가 국민들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거나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지 않느냐. 정치가 해야 될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 대한 국민 불만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해결할 것인가라는 점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중도로 가서 국민이 실망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도로 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정치연합이 3월이면 창당 1년이 된다. 창당 당시 구상과 비교해 보면.
“처음엔 기대들이 많았다. 새누리당 지지도에 근접했었다. 지금은 20%대 초반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는 반증이다.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모두가 제대로 못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이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변화와 혁신 경쟁이 필요하고 국민 신뢰를 얻어야 한다. 위기감과 절박감이 공유돼야 한다.”
김영석 정치부장 yskim@kmib.co.kr
[김영석 정치부장의 데스크 직격인터뷰]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
입력 2015-01-15 1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