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저는 남성성이 더 강한 것 같아요. 로맨스나 멜로물을 보기보다 누아르 장르를 찾아보곤 했지요. 영화를 찍으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제 마음도 피폐해진 건 사실입니다. 예전보다 주변에 화도 많이 낸 것 같아요.”
드라마 ‘꽃보다 남자’와 ‘상속자들’ 등을 통해 한류스타로 부상한 이민호(28)는 재벌 2세의 이미지로 대중에 각인됐다. 귀족풍의 그가 이번에는 넝마를 주우며 연명해야 하는 밑바닥 생활로 내려왔다. 21일 개봉되는 유하 감독의 신작 ‘강남 1970’에서 주인공 김종대 역을 맡았다. 그의 첫 스크린 주연 작품이다.
이민호는 지난 13일 시사회 후 가진 간담회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종대라는 인물을 통해 이 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에게 ‘저럴 때가 있었지’라며 좋게 추억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런 씁쓸함을 통해 지금의 상황에 감사하면서 더 즐겁게 살았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1970년대 강남 개발이 막 시작되던 시절, 강남의 땅을 둘러싼 이권다툼에 휘말린 두 청춘의 얘기를 다뤘다. 극중 종대는 같은 고아원 출신인 용기(김래원 분)와 넝마주이 생활을 하다 유일한 안식처였던 판자촌이 철거되고 우연히 전당대회를 망치러 가는 건달패에 끼면서 인생의 변화를 겪는다. 용기와 헤어진 종대는 자신을 거둔 길수(정진영)와 선혜(김설현) 부녀를 지키기 위해 한 방을 노리며 강남 개발의 이권 다툼에 뛰어들게 되는 인물이다.
이민호는 “당시에는 그런 힘든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없었다면 지금 세대에는 조금 더 많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성공할 수 있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20대에게 그런 감사한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판타지 세계에나 존재할 것 같은 이미지를 주로 연기했다면 이번 영화를 통해 비로소 현실 세계에 두 발을 디딘 것 같은 느낌이다. 피 흘리고 망가지는 연기도 멋있다. 이민호는 “현대의 강남 남자 느낌이 물씬 나는 이미지를 가졌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강남에 들어가서 연기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대중이 호기심 있게 바라보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권력이 폭력을 소비하는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꽤 폭력적이다. 거친 액션이 난무하고 곳곳에서 피가 튄다. 이민호는 “기존에는 달달한 연기만 했다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개인적으로 만족스럽다”고 했다. 이어 “감독님은 의식주에 관련된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고 나도 영화를 찍으면서 한 번도 누아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민호는 ‘꽃보다 남자’로 인기를 얻기 전에 무명 시절을 겪었다. 스무 살 때는 큰 사고를 당해 1년간 침대 위에서만 지내기도 했다. 그때 침대에만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단다. 이후로도 ‘꽃보다 남자’ 전까지 물질적으로나 상황이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종대처럼 치열한 상황은 아니지만 막막함을 느끼거나 빨리 이 상황을 탈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한류스타 이민호, 영화 ‘강남 1970’ 첫 스크린 주연 “더 이상 재벌2세 이미지 아닙니다”
입력 2015-01-15 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