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존 말코비치 방한 “클래식은 나에게 영감을 줍니다”

입력 2015-01-13 15:58

시종일관 불안했다. 때로는 악기들 끼리 엇박자가 났고 음정도 맞지 않았다. 현을 뜯고 활을 누르는 소리에선 조급함이 느껴졌다. ‘딸랑 딸랑’. 청명한 종소리는 음산함을 배가시켰다.

슈니트케의 피아노와 현을 위한 협주곡을 들은 느낌이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악기가 더해졌다. 바로 매력적인 중·저음의 배우 존 말코비치(62)의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로 음악에 극적인 요소가 더해지면서 풍성해졌다.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선 서울바로크합주단 창단50주년 기념 특별정기연주회 리허설이 진행됐다. 이날 리허설에서 말코비치와 바로크합주단이 선보인 슈니트케의 피아노 협주곡을 재구성한 신버전은 14일 기념연주회에서 세계 초연한다.

말코비치는 아르메니아 지휘자 세르게이 심바탄의 지휘하고 러시아 피아니스트 크세니아 코간이 슈니트케의 협주곡을 연주하는 중간, 중간 아르헨티나 소설가 에르네스토 사바토의 ‘영웅들과 무덤에 관해’ 중 제3장 ‘장님에 대한 보고서’를 읽는다.

이 책은 철학적 사상과 관찰이 혼합된 인간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심리학 연구서다. 말코비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난 페르난도 비달 올모스가 돼 1947년 마요 광장에서 자신을 관찰하는 눈먼 여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이 소설은 ‘페르난도’라는 인물의 특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작품의 작가인 사바토가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더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연극이 아닌, 음악 그리고 내레이션이 같이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페르난도의 특징에 초점을 두는 건 다른 의미”라고 설명했다.

말코비치는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음악과 어우러진 내레이션만으로도 그의 연기 내공이 느껴졌다. ‘나를 믿으라(Believe In Me)’며 절규할 때는 긴장된 분위기를 연출했고 ‘보아라(Watch)! 기다리라(Wait)!’고 말할 때는 피아노의 리듬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말코비치는 이번 공연에 애정을 드러냈다. 그가 목소리 연기를 맡은 ‘마다가스카의 펭귄’이 극장에서 상영 중이지만 영화 얘기는 하지 않았고 공연에만 집중했다.

“2012년 코간과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축제에서 같이 공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후 우리는 서로 다른 공연도 함께 공동작업을 해 보는 게 어떨까 얘기를 했습니다. 이번 공연에도 피렌체에서 했던 곡을 연주하려고 했는데 어느 날 코간이 슈니트케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해 주면서 매력을 느꼈죠.”

곡의 매력에 빠진 말코비치는 바로 사바토의 소설이 맞아떨어진다며 추천했다. 그리고 이번 음악회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이기로 했다.

“이번 공연이 7~8번째 시도하는 클래식 공연인 것 같습니다. 나는 이런 경험을 너무 사랑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동기부여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클래식 음악가들과 일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죠.”

완벽한 공연을 위해 말코비치는 코간과 끊임없이 눈짓을 주고받으며 박자를 맞췄다. 들어가는 타이밍이 맞지 않을 때면 지휘자 심바탄, 코간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에게 음악 작업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음악은 제 인생에 특별한 존재”라고 정의했다.

이어 “여러 음악가들과 일하면서 음악이 얼마나 강렬하고, 흥미로운 일인지를 더욱 깨닫게 되는 것 같다”면서 “연극, 영화 등 특징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지만, 이것 또한 나의 인생의 큰 경험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