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9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는 갑자기 터진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 파동’에 밀려 각종 의혹에 대한 실체 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파행을 거듭했다. 여야가 김 수석 출석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김 수석이 전격 사퇴 의사를 표명하는 바람에 어수선한 분위기만 이어졌다.
◇김기춘 실장, 유출문건 진위 추궁에 “진실 아니다”=‘문고리 권력 3인방’ 출석을 장담했던 야당은 이재만 총무비서관을 제외한 나머지 두 비서관을 출석시키는 데 실패했다. 주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상대로 의혹을 추궁했지만 별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김 실장은 유출된 문건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거나 관련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대며 논란을 피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은 ‘靑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 문건의 진위 여부를 캐물었다. 김 의원은 “문건에 나온 김 실장 사퇴설 유포 지시나 검찰 다잡기,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날리겠다는 얘기는 실현됐거나 이미 (실현이) 되고 있던 상황”이라며 “문건이 정감록(조선시대에 나온 예언서)이냐”고 따졌다. 김 실장은 “한참 지난 뒤에 이뤄진 정상적인 인사이동”이라며 “문건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답했다.
김 실장은 유출 문건 내용과 관련해 “그 사람들(이재만·정호성·안봉근)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데 정윤회씨와 전혀 만남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고 했다. 또 “비서실장을 누가 추천했고 누구와 사이가 나쁘다는 내용은 하나도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개입 의혹을 보고받은 직후 대통령 보고를 하지 않은 이유도 시원하게 해명되지는 않았다. 김 실장은 문건 내용이 허위라고 확신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만 설명했다.
또 “수사의뢰할 만한 결정적 단서를 갖지 못해 언론보도 이후에 조치한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야당은 김 실장의 심증만으로 이번 사태를 그대로 덮어뒀다는 논리를 납득하지 못했다.
‘비선 라인’이 청와대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 또한 수박 겉핥기로 끝났다. 새정치연합 박남춘 의원은 “청와대 인사위원회 개최 현황 등 인사시스템이 비밀일 수 없다”며 “인사 과정에서 어떤 논의 절차를 거쳐서 어떤 단계에서 대통령에게 재가를 받는지에 대한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김 실장은 “인사를 할 때 누가 모여서 하느냐는 것도 알려지면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거부했다.
◇김 실장, ‘김영한 불출석’에 불쾌감 드러내=김 실장은 야당 의원들의 공격적인 질문에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 “언제든지 물러날 자세를 갖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는 펜을 든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결연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자식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선 살짝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나 오후에 재개된 회의에서 김 수석이 국회 출석 요구에 불응하자 다소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김 실장은 “민정수석이 출석하도록 내가 지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출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면서 “여야가 합의해 출석을 요구한 데 대해, 또 비서실장이 지시한 데 대해 공직자가 응하지 않는다면 강력한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앞서 김 실장은 오전 10시쯤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실장은 전체회의장과 국무위원 대기실을 오가는 동안 쏟아진 취재진 질문에 단 한마디 답변도 하지 않았다.
김 실장 뒤편에 먼저 와 앉아있던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긴장한 표정으로 여러 차례 두 손을 문지르기도 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김영한 수석 사퇴’에 파행 거듭한 국회 운영위원회
입력 2015-01-09 1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