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bin item check.”(기내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지난달 5일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인천으로 향하기 위해 활주로로 항하던 대한항공 KE086 항공기가 갑자기 정지했다. 이어 3분간 움직이지 않았다. 주기장엔 이륙하기 위해 대기하던 항공기들이 많아 위험한 상황이었다. 공항 관제탑이 이유를 묻자 기장은 이같이 답했고 관제탑은 ‘램프 리턴’(항공기를 탑승게이트로 되돌리는 일)을 허가했다.
이 항공기가 갑자기 멈춰선 것은 박창진 사무장이 인터폰으로 기장에게 “기내에 응급상황이 발생했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이 ‘응급상황’은 조현아(41·여)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견과류의 일종인 마카다미아 서비스를 문제 삼아 여 승무원과 박 사무장을 내리게 하려 한 것이었다. 수백명 승객과 항공기의 안전을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한 재벌 3세가 검찰의 대한항공 본사 압수수색 27일 만에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검찰은 이번 사건을 조 전 부사장의 기내 난동과, 이후 대한항공의 사건 은폐 과정이란 두 갈래로 수사해왔다. 우선 조 전 부사장의 기내 난동 부분에 항공보안법 위반(항공기항로변경·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과 형법상 강요 및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조 전 부사장은 “항공기가 출발한 줄 몰랐다”며 항공기항로변경죄를 부인해왔다. 그러나 검찰은 “출입문이 닫힌 뒤부터 운항으로 규정되는 만큼 조 전 부사장이 오너의 지위를 남용해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조 전 부사장이 승무원 등의 정상적인 업무 절차와 체계에 차질을 줘 법질서를 무력화했다고도 지적했다. 운항중인 기내 통제에 대한 전권을 쥐고 기내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사법경찰권을 행사하는 기장과 사무장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여객용 항공기는 항공법과 항공보안법 및 국제협약 등에 따라 탑승 단계부터 안전을 최우선으로 엄격하게 통제받도록 돼 있다.
검찰은 또 국토부 조사가 진행된 지난달 8∼12일 대한항공의 조직적 사건 은폐·조작 시도에 조 전 부사장의 역할이 컸다고 결론짓고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추가로 적용했다. 검찰에 따르면 조 전 부사장은 사무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국토부 조사를 받는 동안 여 상무로부터 진행 상황과 향후 계획은 물론, 일등석 승객을 회유한 경과 등에 대한 보고를 실시간으로 받았다. 그런데도 조 전 부사장은 지난달 8일 국토부의 첫 조사 직후 여 상무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뭘 잘못했느냐, 박창진(사무장)이 잘못했으니 내리게 한 것 아니냐’는 취지로 말하는 등 여러 차례 ‘질책성 지시’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기관의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함으로써 부실조사라는 결과가 초래됐기 때문에 여 상무와 함께 ‘공동정범’이 성립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여 상무가 국토부 조사를 받는 대한항공 임직원들에게 허위진술을 요구하고, 사무장 등에게 허위 경위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했다고 밝혔다. 또 이번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기 전인 지난달 6일 전 박 사무장이 작성한 최초 보고서를 삭제하고 검찰이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동안 부하 직원에게 남은 자료를 삭제하거나 컴퓨터 한 대를 바꿔치기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중간수사결과 발표 이후 시민단체가 의뢰한 좌석 업그레이드 특혜 의혹과 무료 탑승 의혹에 대한 수사를 계속 진행해 나갈 방침이다. 법원은 공소장을 접수받은 뒤 전산 추첨을 거쳐 내일 중 재판부에 배당하기로 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활주로로 향하던 대한항공 KE086편… “Cabin item check”
입력 2015-01-07 19:47 수정 2015-01-08 1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