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아파트 팔면 생활 가능했는데…” 온 가족 살해한 40대 가장 유서 발견

입력 2015-01-07 06:00
사진=국민DB

그가 잃게 될 서울 서초구의 55평 아파트와 외제차는 다시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를 가장으로 따르던 가족은 영원히 못보게 됐다.

서울 서초구 세 모녀 살해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강모(48)씨가 남긴 두 장 분량의 유서를 통해서다. 혼자 자살하는 대신 가족을 모두 데려가려 했지만, 혼자 살아남았다.

강씨는 법조인들이 많이 사는 부촌으로 유명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146㎡ 넓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재력가였다. 실직 후 마지막 보루로 삼았던 주식투자마저 실패하자 절망했다.

강씨는 혼자 자살하는 대신 가족을 모두 데려가는 편을 택했다. 그는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30분 사이 아내(44)와 맏딸(13), 둘째딸(8)을 잇따라 살해한 뒤 도주했다. 그는 충북 대청호에서 투신을 시도하고 흉기로 손목을 긋는 등 최소 두 차례 이상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결국 이날 낮 12시 10분께 경북 문경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비극의 시작은 3년 전 컴퓨터 업체에 다니던 강씨가 실직하면서였다. 강씨는 가족 중 아내에게만 실직 사실을 알린 뒤 백방으로 새 직장을 물색했다. 하지만 40대 중반 남성에게 취업시장의 문은 좁기만 했다.

강씨는 두 딸에게 직장을 잃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실직 후 2년간 선후배들이 일하는 사무실을 전전하는 생활을 했다. 그는 더 이상 받아주는 곳이 없어지자 최근 1년간은 서울 남부터미널 인근에 고시원을 얻어 낮시간을 보냈다. 이런 와중에도 강씨는 중산층의 생활수준을 고집하며 지출을 줄이지 않았다.

결국 모아놓은 돈이 바닥을 드러냈다. 강씨는 2012년 11월께 자신이 살고 있던 대형 아파트를 담보로 5억원을 빌려 마지막 도박에 나섰다. 주식투자 대박으로 재기하겠다는 꿈을 꿨던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강씨는 대출금으로 아내에게 매달 400만원씩 생활비를 주고 나머지는 모두 주식에 투자했다”면서 “하지만 투자는 성공적이지 못해 2년여가 지난 현재 남은 돈은 1억 3000만원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 동안 지출된 생활비 1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4억원 중 2억 7천만원을 주식으로 날린 셈이다.

경찰은 “강씨는 2004년 5월께 이 아파트를 구입했고 현재 시가는 대략 8∼10억원 수준”이라면서 “강씨는 5억원 외에 다른 빚도 없는 상태여서 집을 팔고 생활수준을 낮추면 충분히 생활이 가능한 상태였다”고 아쉬워했다.

강씨는 온 가족을 살해한 뒤 충북 청주, 경북 상주, 경북 문경으로 지그재그를 그리며 이해할 수 없는 동선을 보였다. 경찰은 “강씨가 승용차를 타고 고속도로로 나온 뒤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길을 달렸다”면서 “그는 심지어 자신이 검거된 장소가 어디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