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금융시장이 멍들고 있다. 유가 급락이 가뜩이나 극심한 수요부진과 달러 강세로 불안한 투자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만드는 형국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선을 위협받으면서 세계 주요국 증시가 폭락했고, 코스피지수는 1900선이 무너졌다.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이 커지면서 유로화 가치가 9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 국제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는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선에서 거래됐었다. 하지만 미국경제 회복에 따른 달러 강세로 상품시장에 있던 글로벌 자금이 빠져나갔고, 유럽·중국·일본의 경기침체가 이어지며 하락세가 이어졌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미국의 점유율 경쟁, 원유수출 비중이 높은 러시아를 제재하려는 미국의 증산정책은 유가 하락세를 부추겼다. 특히 지난해 11월말 OPEC이 일일 생산 쿼터를 3000만 배럴로 유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유가는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해 12월 중순 60달러선이 무너졌고, 지난해말에는 55달러선도 깨졌다. 지난 5일에는 배럴당 50.98달러에 거래돼 지난해 1월 평균(배럴당 104달러)보다 절반 이상 떨어졌다. 중동 산유국들은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과의 점유율 경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중동 최대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미국과 유럽에 수출하는 원유가격을 더 낮추겠다고 밝혀 유가 급락에 기름을 부었다. 유가 하락으로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몰린 러시아도 가격이 조금이라도 비쌀 때 생산량을 늘리려는 ‘제살 깎아먹기’ 경쟁에 가세했다. 국제금융센터 오정석 연구원은 “원유 공급과잉과 강달러, 미국을 제외한 주요국의 수요 부진 등 전방위적인 하방 압력이 가해지고 있어 바닥이 어딘지 예측하기 어렵다”며 “다만 이런 상황은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1분기에 바닥을 확인하는 작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가 급락은 즉각 세계 증시에 충격파를 던졌다. 저유가로 에너지 비용이 줄어들면 경제에 도움이 되리란 ‘일반론’은 먹혀들지 않고 있다. 극심한 수요부진이 계속되는 현 상황에서는 유가 하락이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울 것이란 ‘비관론’이 우세하다. 미국 뉴욕증시는 5일(현지시간) S&P500 지수(-1.83%)와 다우지수(-1.86%)가 동반 하락했고, 유럽과 일본 증시도 2~3%대 떨어졌다. 세계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폭락하자 코스피지수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6일 개장하자마자 1900선이 무너진 코스피는 기관과 외국인의 동반 매도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전날보다 33.30 포인트 하락한 1882.45로 장을 마감했다. 2013년 8월 이후 최저치다.
2012년 남유럽 재정위기의 중심에 있었던 그리스는 ‘정치리스크’에 휘청거리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그리스 의회가 대통령 선출에 실패하면서 오는 25일 열리는 조기총선에서는 ‘유로존 탈퇴’를 내세운 급진좌파 성향의 연립정당 ‘시리자’가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시리자는 그리스의 채무탕감과 긴축정책 반대 등의 협상안이 결렬되면 유로존 탈퇴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리스발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5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유로화는 1.1933달러에 거래돼 2006년 3월(1.202달러)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그리스 위기와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 영향으로 유로화 약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유가급락에 멍드는 금융시장
입력 2015-01-06 1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