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영웅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
화재로 조난당한 카페리 ‘노르만 애틀래틱’호 승객들의 구조작업이 끝난 뒤에야 배에서 내린 아르길리오 지아코마치(62) 선장은 자신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언론 보도에 손사래를 쳤다. 지아코마치 선장은 “배에 탄 모든 사람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면서 몸을 낮췄다고 AFP통신은 1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사고 당시 지아코마치 선장은 화재와 강풍 속에서 선내에 생존해 있던 427명의 승객이 모두 구출될 때까지 배를 지키며 구조작업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들을 버려두고 제일 먼저 탈출한 이준석 선장의 추태와 극명하게 엇갈리는 대목이다.
지아코마치 선장이 몸을 낮춘 데는 이유가 있다. 현재까지 탑승자 중 13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고 정확한 탑승자 수가 확인되지 않아 희생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그리고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사법처리될 가능성도 있다. 지아코마치 선장은 이날 검찰에서 5시간에 걸쳐 강도높은 조사를 받았다. 선박의 적재나 사고 대처와 관련한 책임이 드러나면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될 수도 있다. 그는 검찰에서 “안전 규정은 지켜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지난 2012년 발생한 이탈리아 국적의 초호화 유람선 콩코르디아호 좌초 사건으로 실추된 이탈리아의 명예를 지아코마치 선장이 되살렸다는 국민적 칭송이 잇따르고 있다. 당시 콩코르디아호의 선장 프란체스코 셰티노는 좌초 당시 모든 승객에 앞서 제일 먼저 배를 탈출했고 ‘겁쟁이 선장’(Captain Coward)으로 불리며 해운업계의 수치로 전락했다.
항해중인 선박에서 선장은 최종 결정권과 명령권을 지닌 ‘절대자’로 통한다. 조난 시 승무원을 지휘해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사명도 지닌다. 이는 1852년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이드호와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를 거치며 확립된 해상 사고의 오랜 불문율이다.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에드워드 J. 스미스 선장이 남긴 “영국인답게 행동하라(Be Britsh)”는 말은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여객선 선원들의 직업윤리와 자존심을 대변하는 금언이 됐다.
지아코마치 선장의 행동은 콩코르디아호와 세월호 사건으로 실추된 전 세계 여객선 선원들의 명예를 일부나마 회복시켜준 것이라는 평가다.
지아코마치 선장의 딸 줄리아는 “우리 가족에 매우 힘든 시간이지만, 아버지가 승객과 승무원을 구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으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세월호와 너무 다른 이탈리아 선장 “나를 영웅이라 부르지 마라”
입력 2015-01-02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