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는 북한이 신년사에 이어 오는 15일 전후로 ‘2차 남북대화 제안’을 해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남북간 신뢰를 전제로 삼긴 했지만 공개 회담 외에 막후접촉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도 북한의 대남 정책기조가 ‘대결과 긴장 조성’에서 ‘대화’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형식도 중요하다”→“형식에 구애받지 않겠다”, 정부의 극적 변화=정부 고위 당국자는 2일 언론 브리핑에서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지난해 5월 남북 1차 고위급 접촉 협상이 불발됐을 때 박근혜 대통령이 “내용만큼 형식도 중요하다”고 한 발언과 상당히 대비되는 언급이다. 남북 대화에서의 원칙과 투명성을 앞세우며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요구했던 우리 정부가 대북 기조를 상당히 변화시켰음을 의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신년사에 ‘최고위급 회담’을 언급하자 “우리 측이 연말에 고위급 회담을 제의하자 북한이 화답해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의 대남정책 기류 변화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남북 대화가 절실한 북한의 최근 상황과 속내를 잘 알고 있었고, 앞으로도 북한이 이런 기조를 버리지 않으리라는 확신이다.
일단 정부는 북한이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예정된 이달 중순쯤 구체적인 양측 회담 제의를 해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북한은 박 대통령 기자회견이 끝난 뒤인 1월 16일 ‘중대제안’을 해왔다. 당시 북한은 ‘상호비방 중지’, ‘키 리졸브 독수리연습 등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을 요구하며 이산가족 상봉 협상을 하자고 했었다.
그러나 남북은 각각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대화’, ‘남북정상 회담 개최 가능’ 등의 카드를 상대방에 던져놓고 화답을 기다리며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는 양상이다. 서로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포석이다.
◇1~2월 협상 통해 정상회담 ‘불씨’ 이어갈 듯=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29일 통일준비위원회 명의로 1월 중 당국간 회담 개최를 제의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도 북한의 신년사가 발표된 이후 “가까운 시일 내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당국간 대화를 개최하자”고 다시 제안했다. 북한이 우리 측 제안에만 응하기만 하면 정상회담 의제까지 포함해 논의할 수 있다는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까지도 나왔다. 심지어 막후 접촉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제1비서는 육성 연설을 통해 직접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흡수통일 정책 추진’ 중지 등 남북대화의 조건들을 내걸었다. 우리 정부가 다 들어줄 수는 없지만, 양측 간 대화분위기가 조성되면 충분히 북한 지도부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수준으로 조율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일단 남북은 실제 회담 재개까지 격(格), 시점, 의제 등의 문제를 놓고 치열한 뭍 밑 기싸움이 이어갈 전망이다.
우선 대화 형식은 북한이 통일준비위원회를 ‘흡수통일 전위부대’라고 규정하고 있어 ‘통준위-통일전선부’ 간 회담은 거부감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2차 고위급 접촉 재개 등으로 형식을 바꿔 역제안할 가능성이 있다.
회담 재개 시점은 1월 안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통일부 관계자는 “설 연휴 이산가족 상봉을 가정하면 한 달 이상의 협상 과정이 필요해 당장 실무급 협상부터 열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월 이후에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예정돼 있는 점도 문제다.
일단 대화의 물꼬만 트이면 의제는 포괄적으로 다뤄질 공산이 크다. 우리 정부가 ‘논의 가능한 다양한 의제’를 강조한 바 있고, 김 제1비서도 “부문별 회담이 가능하다”고 했다. ‘5·24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이산가족 문제 등의 경제·사회 의제가 우선 거론된다. 그러나 정상회담이 추진되는 방향으로 회담이 격이 격상될수록 북한 핵 문제 등 남북이 의견 차를 좁히기 힘든 문제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정치·군사 분야 문제도 협상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군사훈련 중단 등 북측의 제안에 대한 우리 측 반대급부로 우리 측이 핵 개발 동결, 서해북방한계선(NLL) 및 군사분계선(MDL) 충돌 방치책 등이 제안될 수 있다.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
정부가 막후 접촉까지 꺼내든 배경은
입력 2015-01-02 17:03 수정 2015-01-02 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