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임신시키고 결혼각서 불이행했다면~

입력 2015-01-01 12:16
10대 여고생에게 임신을 시키고 결혼을 약속하는 ‘각서’를 쓴 뒤 이행하지 않았다면 책임은 어디까지 져야할까?

회사원 B(28)씨는 2010년 당시 18세 여고생이던 A씨를 만나 하룻밤을 나눴다. 이후 두 사람은 몇차례 더 만나 성관계를 가졌다. 결혼을 약속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임신이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A씨 어머니는 B씨를 만나 “딸이 임신한 지 20주가 넘었다. 책임져라”라고 추궁했다. 이에 B씨는 “더 지체하면 낙태수술을 받기 어렵다”며 “임신중절수술을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완강했던 A씨 어머니는 ‘결혼 각서’를 요구했다.

B씨는 ‘2011년 5월까지 혼인신고를 하고 만약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위자료 등으로 2억원의 손해배상을 책임진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작성해 건넸다.

A씨는 약정서를 받은 다음날 모 병원에서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 B씨는 수술 이후 A씨의 연락을 피하고 결혼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A씨는 B씨가 일방적으로 약혼을 파기해 1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약혼해제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부산가정법원 가사1부는 ‘B씨는 A씨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는 두 사람 사이에 결혼 이야기는 전혀 없었던 점과 B씨가 혼인할 의사도 없이 낙태를 시킬 목적으로 일단 결혼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점 등을 들어 두 사람 사이에 약혼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B씨가 미성년자인 A씨와 성관계를 해 원하지 않던 임신을 하도록 한 점, 약정서를 주면서 임신중절수술을 하도록 하고 이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점, A씨가 임신에 관한 주의의무를 더 부담한다고 볼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약정서에서 정한 금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다만 A씨도 경솔한 행동을 했고 2억원은 B씨가 지급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는 금액이기 때문에 손해배상금 중 1000만원을 초과한 부분은 무효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산=윤봉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