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미술전문기자 이구열옹 “미술을 보면 국가의 미적 안목 수준 보이죠”

입력 2014-12-31 16:47

미술계 인사들에게 이구열(82)이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다. 그는 ‘한국문화재수난사’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 ‘북한 미술 50년’ 등 주로 근대미술사와 관련해 많은 책들을 냈다. 불혹에 설립한 한국근대미술연구소의 성과물이다.

그는 국내 최초의 미술전문기자이기도 하다. 1959년 ‘민국일보’에 입사한 후 여러 일간지를 거쳤고, 신문사 폐간으로 언론계를 떠날 때까지 15년 기자 생활에서 오직 미술만 취재했다. 이니셜 구(龜)자를 써서 기사를 내보내 ‘거북이 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최근 회고기 ‘나의 미술기자 시절’(돌베개)을 출간한 이 소장을 3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뒤 그의 연구소에서 만났다. 사무실엔 미술 관련 책과 잡지가 수북했다.

“칠순 때 주변에서 권유해 시작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책으로까지 엮여져 나왔어요. 허허.”

어떻게 미술 분야만 취재할 수 있었을까. 그는 화가가 꿈이었고 실제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했으나 가정형편상 포기해야 했다. 군 복무 중 휴가만 나오면 헌책방을 누비며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타임, 뉴스위크 등 미국 시사지 아트 섹션을 탐독하며 미술에의 허기를 달랬다.

그렇게 쌓은 전문성이 미술 분야를 취재하며 발휘됐다. 미니멀리즘 등 세계 미술계 동향까지 소개하는 그의 기사는 달랐다. 1972년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첫 기획전시인 ‘한국근대미술 60년 전’에 관여하기도 했다.

이구열의 미술기자 시절은 현대미술사와 궤를 같이 한다. 1950년대 미술 조직 내부의 홍대파·서울대 파간 갈등, 60년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에 반기를 든 덕수궁 노천 전시, 4·19혁명 후의 이승만 동상 수난사, 70년대 상업화랑 출현 등 책장을 넘기다보면 현대미술계의 흐름이 읽힌다.

그의 탁월한 점은 꼼꼼한 기록과 부지런함이다. 자신의 모든 기사를 스크랩했다.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 간행된 ‘황성신문’ ‘매일신보’ 등의 미술 관련 기사도 모두 기록했다. 근대미술연구소를 차릴 수 있는 ‘지식 밑천’이 됐다.

“원로들을 만나 취재하면 가물가물한 기억에 의존해 말하는데, 그냥 쓰는 것으론 성에 안차 옛 신문을 통해 확인하게 된 게 그리 이어진 게지요.”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도시 미관을 통해서도 국가적 수준의 미적 안목을 알 수 있다는 그는 미술의 효용성을 미술기자들이 전문성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회고기를 쓰는 내내 즐거웠는데, 못다 한 미술계 뒷이야기를 건강이 허락하는 한 쓰고 싶다”며 “그건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는 작업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