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였던 다양성영화, 화려한 ‘백조’로 태어나다

입력 2014-12-31 03:34 수정 2014-12-31 16:35

독립영화 다른 말로 ‘다양성영화’는 늘 극장에서 ‘미운 오리’ 신세였습니다. 유명한 배우들이나 명성 높은 감독, 화려한 볼거리가 없는 작은 영화들은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관객들을 만날 기회조차 쉽게 잡을 수 없는 것이지요. 그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12년에 영화 ‘피에타’로 한국영화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 김기덕 감독의 신작인 ‘일대일’이 있습니다. 일대일은 2014년 5월 22일에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20번째 장편영화이지만 개봉 당시 상영관을 50여개 정도만 확보할 수 있었고, 총 관객 수 8000여명을 기록하며 개봉한지 일주일 만에 극장 상영을 종료하고 IPTV와 VOD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거장의 작품이라 해도 독립 영화가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갖는 건 힘든 일이지요. 하지만 어디에나 이변은 일어나는 법. 올해 극장계에 일어난 가장 특별한 기적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작은 영화들, 이른바 다양성영화들의 대반란이었습니다. 이른바 ‘아트버스터’라 불릴 정도로 상업 영화와 비교했을 때 불리한 조건들 속에서도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 흥행에 성공한 세 작품을 되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호텔…‘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올해 가장 먼저 일어났던 기적은 바로 지난 3월 20일에 개봉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독창적인 미적 감각을 가진 감독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 영화에서 1930년대는 1.37:1의 화면 비, 1960년대는 와이드 스크린, 1980년대는 1.85:1의 화면 비율로 바꾸는 등 당대에 유행한 영화화면 비율을 사용함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스크린 미학을 선보입니다. 또 빈티지 풍의 아기자기한 세트와 다양한 할리우드 톱스타들의 열연은 영화의 볼거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이 영화는 국내외에서 그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아 제 86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제 72회 골든 글로브 작품상 후보에도 그 이름을 올렸습니다.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아 다양성 영화인데도 70만 관객을 돌파하며 3월 다양성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는데요. 여러분도 어느 날 갑자기 세계 최고 부호인 마담D의 살인범으로 몰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지배인인 구스타브와 그를 따르는 로비보이 제로의 환상적인 모험담에 동참해보지 않으실래요?

‘원스’의 감동을 다시 한 번…‘비긴 어게인’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개봉하기 전까지 다양성 영화 중 역대 최초로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국내 다양성 영화 역대 흥행 1위를 차지했던 영화 ‘비긴 어게인’이 두 번째 주인공입니다. ‘비긴 어게인’은 이미 ‘원스’로 다양성 영화 열풍을 몰고 왔던 존 케니 감독이 7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영화입니다. 2013년 9월 7일에 열린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처음 개봉했던 이 영화의 원제가 ‘노래가 당신의 인생을 구할 수 있을까요?(Can a song save your life?)'였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음악으로 상처 받은 주인공들이 서로를 치유해간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미국의 인기 밴드 마룬5의 보컬인 애덤 르바인의 첫 연기 도전으로 화제가 되기도 한 이 영화는 주옥같은 노래들이 가득 담긴 OST 앨범도 큰 호응을 얻어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원스‘에 이어 이 작품도 세계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큰 흥행 성적을 거뒀는데 존 케니 감독이 차기작은 한국에서 촬영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네요.

현대에 부르는 ‘공무도하가’…‘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마지막 주인공은 2014년 12월 극장가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입니다. 11월 27일에 이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때만 해도 아무도 이 영화가 대반전의 주인공이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개봉 첫 주에 6만344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7위로 데뷔했던 이 영화는 점차 입소문을 타고 흥행 역주행을 시작하더니 마침내 ‘인터스텔라’마저 꺾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30일 현재 360만 관객을 돌파하며 ‘비긴 어게인’에게서 역대 다양성 영화 흥행 1위 기록마저 빼앗아오지요.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노년의 부부애를 진솔하게 다룬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의 마음을 적시며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에 개봉해 역시 흥행몰이에 성공한 ‘워낭소리’와도 일면 닮아있는 이 영화는 노인의 사랑만이 전할 수 있는 감동과 인생의 교훈을 잔잔하게 전해줍니다. 연일 흥행기록을 경신하는 이 영화를 통해 올 겨울 추운 마음에 따뜻한 불을 지피는 건 어떨까요?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