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술자들' 촬영장소 헤이리 화이트블럭 신진작가전 12명 회화, 드로잉, 영상, 설치 등

입력 2014-12-28 14:21 수정 2014-12-28 14:36
화이트블럭 전경
기술자들 장면
정진아 작가 작품
지혜진 작가 작품
김현수 작가 작품
개봉 4일째인 27일 100만 관객을 돌파한 김우빈 주연의 영화 ‘기술자들’의 초반 배경은 미술관이다. 김우빈의 극중 역할 지혁의 원래 전공은 서양화다. 전시를 두고 그는 거래를 한다. 그곳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길 72에 위치한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이다. ‘기술자들’이 뜨고 있고 이 영화 촬영 장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이트블럭에도 관람객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2015년 2월 22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는 신진작가전 ‘2015 Portfolio for Future’이다. 김병진, 김승민, 김유나, 김현수, 윤여선, 이민영, 정진아, 지혜진, 진철규, 호상근, 황효덕, Gemma Hisataka 등 총 12명의 작가가 참가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 신선한 젊은 작가들의 회화, 드로잉, 영상, 설치 작업 등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지난 19일 오픈해 2014년 2월 22일까지 열린다. 월요일~금요일은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토요일~일요일, 공휴일은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7시30분까지다(070-7862-1148·031-992-4400).

이제 막 작가로 성장하기 위한 첫 발을 뗀 이들의 작품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조형언어를 발견하거나 이들을 통합하는 세대적 감성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탄탄한 내러티브의 구축을 기반으로 하거나, 복고적인 재현방식을 방법론으로 삼거나, 관객과의 직접적 소통을 기반으로 하여 이미지를 구현하는 등의 것들은 이미 미술계에서 익히 알려진 방식들이다.

김병진 작가의 작업은 부재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상실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관계의 죽음, 즉 관계가 끝나는 것에 대한 것으로 확대되어 나타났고, 그것은 과거의 존재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이나 영상을 기록하거나 관련된 사물을 수집하는 등의 행위로 이어졌다.

김승민 작가는 일상적 몸짓을 포함한 개인의 역사와 현재 미래가 응축된 특수한 지점으로 신체를 규정한다. 자연의 피조물에 불과하던 신체가 어떠한 방식을 거치더니 문화를 담은 신체로 기록되고 구성되고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정보들이 신체에 기록되었고, 결국 신체는 단순한 개인의 범주를 뛰어넘어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거듭났다.

김유나 작가는 미스터리하고 불안한 풍경에 초점을 맞춘다. 과거와 미래의 교차점인 현재이다. 고속도로 풍경을 보고 있으면 비현실적인 감각이 나타나고 호기심이 생긴다. 이런 종류의 호기심이 내 어린 마음이라면 불안감은 어른이 되고자 함에서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호기심과 불안함이 함께 느껴진 결과가 이번 작업에 나타났다.

김현수 작가는 풍경을 소재로 하여 연장의 과정들을 재조명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모든 공간은 연결과 교차를 반복하며 이어져있다. 문득 발견되는 공간은 오히려, 잠재적으로 다양한 층을 가진 풍경이 된다. 그것은 반드시 상징적으로 솟아있는 ‘무언가’만이 아닌, 길가나 이면도로의 어떤 것 등 담담히 자리를 지키는 일상의 것에 좀 더 다양한 층위를 만들 수 있도록 한다.

윤여선 작가는 대상의 혼재, 관계에 의한 의미가 다변적, 다의적 성격을 지니게 하는 현상 내에서 다양한 개념들이 혼재되며, 불확정성, 불연속성을 포함하게 되고, 공간의 모순성은 다시 분해, 분산, 환이, 변환의 양태를 띤다. 경계의 모호성은 작업 내에서도 또 다른 장을 형성하게 되고, 개념을 생성했다가 분화시키는 과정을 거듭시킨다. 현상과 비가시성, 다시 드러나면서 배제되고 선택되어지는 공간 관계를 보이고, 관찰자와 내적 사유를 하는 존재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민영 작가는 어릴 적 이야기를 동화적인 화면으로 풀어내는 연필드로잉 시리즈이다. 죽음 목격의 트라우마, 개인의 심리적 갈등, 가족이야기, 동화적 상상과 현실의 혼동에서 오는 환상, 남성성에 대한 동경 등 어릴 적 본 연구자가 경험했던 묘한 심리적 추억을 연필을 이용하여 마치 블랙 유머의 한 장면처럼 그려내고 있다.

정진아 작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연물의 삶에 서서 그들이 만날 인연(因緣)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그 흔적은 자유롭고 유동적인 위치에서 안과 밖을 넘나들며 어떠한 원인이 없이 변형되는 과정을 겪는다. 이 때 새롭게 형성되는 것들은 때로는 우연이거나 필연처럼 각각 의미를 갖는다. 연기처럼 사라지는 물, 단단한 돌이 그림자처럼 해체되는 과정이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그 너머의 작용을 풍경으로 펼쳐내는 것이다.

지혜진 작가는 “말할 수 없어요. 말할 수 있어요, 말할 수 없어요. 말할 수 있어요”를 반복한다. 나는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있다. 보이는 것들은 대부분 그런 것에 연유된다. 시선은 차갑게, 정신은 들끓게, 몸은 바쁘게 움직인다. 두근두근, 우우우--거리는, 내 속에 사는 것들은 이러한 이유를 가지고 속에 사는 것 같다. 나는 너희들과 헤어지고 싶어. 그러나 또 다시 나는 모르겠다.

진철규 작가는 관계가 충동하는 힘이나 혹은 권위 같은 잘 보이지 않고 뚜렷한 실체가 없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었다. 대상에 깊게 파고들기 보다는 밖으로 드러나는 얕은 면을 의도적으로 건드리며, 때로는 시시덕거리는 한량같은 일들을 하기도 했다. 언뜻 미신 같아 보이는 부분들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스스로의 세계에 리얼리티를 부여하기 위해서이다.

호상근 작가는 주변을 몇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자고 한다. 똑같은 일상이지만 평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일상은 흥미로운 것-생경한 듯 하지만 익숙한, 익숙한 줄 알았지만 낯선-투성이임을 깨닫게 된다. 작가는 직접 보거나 ‘호상근 재현소’를 통해 의뢰인에게 들은 풍경을 기록해 나갔다.

황효덕 작가는 초반의 얼굴은 비교적 선명하였지만 그려나가면서 점점 흐트러져 유령과도 같은 이미지로 변해갔다. 단지 명확하진 않지만 화면을 만질수록 누군가가 확실하게 존재할 것 같은 커다란 느낌자체를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불가능한 것을 말하거나, 거짓된 행동을 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은 단지 “아직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라는 희망에서 비롯된 가능성들을 생각해보고 싶을 뿐이다.

겐마 히사타카 작가는 지나가버리는 삶 속의 이야기나 감정이 풍경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순간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귀중한 장소가 된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잊은 채로 살아가기 쉽다. 하지만 풍경은 삶을 과거와 현재, 미래로 잇는 점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둘도 없는 점들을 이어서 선을 긋고 삶의 이야기를 남기려고 한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