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기다리며 ‘칼바람’ 피했다 가세요…관악구 ‘동장군 대피소’ 인기

입력 2014-12-25 18:04

올 겨울은 따뜻하리란 기상청 예보가 무색하게 매서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칼바람’에 움츠러들기 일쑤다. 서울의 한 구청이 이런 사람들을 위해 ‘버스 기다릴 때만이라도 추위를 피하게 하자’며 작은 아이디어를 냈다. 사소해 보여도 그 속에 담긴 ‘배려’가 따뜻해 시민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고 있다.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진 25일 오전 서울 봉천동 서울여상 앞 버스정류장에는 낯선 비닐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오가는 버스가 잘 보이도록 투명한 재질로 만들어졌다. 드나드는 입구가 좁아 뼛속까지 얼리는 한기가 천막 안으로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천막에선 학생 5명이 언 몸을 녹이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비닐 천막의 이름은 ‘동장군 대피소’다. 관악구청은 지난 18일 관내 버스정류장 35곳에 높이 2m, 가로 3m, 세로 1.5m 천막을 세웠다. 바람이 거센 언덕을 비롯해 추운 길목을 골라 설치했다. 천막이 생기면서 서울대입구역 앞에 길게 늘어서던 버스 대기 줄은 사라졌다. 대신 대피소 안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황인철(22)씨는 “동장군 대피소 안에 사람이 많으면 온기 때문에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며 “친구들이랑 잡담하다 버스를 놓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용하는 시민이 많아지면서 이것저것 요구하는 사람도 생겼다. 관악구 관계자는 “대피소 안에 난로도 하나 놓자는 민원이 있어 난처했다”면서 “전기를 낭비한다는 말이 나올까 걱정돼 난로 설치 여부는 신중하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워낙 바람 센 곳이 많다보니 ‘천막이 날아가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다. 이동형 구조물인 탓에 바람이 거세게 불면 휘청거리거나 넘어질 수 있어서다. 관악구는 벽돌 사이에 앵커를 박아 고정하거나 시멘트 위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고정하는 식으로 일단 대비해뒀다. 관악구 관계자는 “앵커가 튼튼해 염려는 없다. 태풍처럼 강한 바람이 불면 걱정되지만 웬만해선 무너질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훈 기자 zeitgei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