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와 도의회가 의원 공약사업과 민원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예산 20억원을 두고 물밑 협상을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집행부와 의회가 예산을 놓고 ‘거래’를 했다는 정황이 확인되면서 도와 의회 간 갈등은 더 확대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박정하 제주도 정무부지사는 23일 제주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지난 9월 중순쯤 의장 집무실에서 구성지 도의회 의장이 (의원 공약사업비 등의 명목으로) 20억원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박 부지사의 발언은 그동안 제주도의회가 “공식적으로 20억원을 요구한 바 없다”고 주장해왔던 것과 다른 내용이어서 진실 공방이 예상된다.
박 부지사는 도의회 의원들이 원희룡 제주지사가 방송에 출연해 한 발언을 도의원들에게 해명하는 과정에서 “의장 개인의 아이디어인지 다른 의원과 협의를 거쳐 얘기한 것인지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지만 의회를 대표하는 의장이 하는 말이라 공식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였다”며 이같이 증언했다.
앞서 원 지사는 지난 19일 KBS1 라디오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부 도의원들이 사심 내지는 욕심이 껴서 1인당 20억원씩 보장해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등의 발언을 해 의원들의 반발을 샀었다.
박 부지사는 다만 원 지사가 방송에서 일부 지나친 표현을 한 것에 대해서는 의회에 사과할 것이라며 “내일(24일) 추경안 처리를 위해 열리는 본회의장에서 의회에 사과드리도록 권유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논란에 대해 구 의장은 도의회 출입기자와의 간담회에서 “20억원을 요구한다고 말한 적 없다. 박 부지사의 말은 거짓”이라며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놨다.
구 의장은 다만 의원 공약사업 예산으로 의원 1인당 10억원씩 배정하겠다는 답변을 받은 상태에서 주민 민원 해결을 위한 의원사업비를 10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려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구 의장은 “선거 직후 새누리당 당선자 모임에서 한 의원이 공약사업 예산을 배정해달라고 말하자 원 지사가 그렇게 하겠다고 했으며, 이후 제가 박영부 도 기획조정실장을 통해 ‘의원 1인당 공약사업 예산을 10억원씩 배정해 달라’고 요청하자 흔쾌히 그렇게 하자는 답변이 왔다”고 말했다.
그런 뒤 지역 주민 민원 등을 처리하기 위한 의원사업비를 기존에 관행적으로 배정하던 3억3000만원에서 10억원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했으나 집행부에서 난색을 표했으며, 이에 8억원 정도로 하자고 했으나 집행부에서 5억원으로 낮춰달라고 제안해 결국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구 의장은 “3억3000만원 배정해주던 것을 고작 1억7000만원 늘려주면서 예산 증액이 없도록 하라고 의원들에게 얘기할 수가 없어서 집행부의 제안을 거절했다”며 “순수한 마음에서 진정성 있게 한 얘기를 이렇게 매도할 수 있는지 통탄스럽다”고 분개했다.
이에 대해 박 부지사와 박영부 실장도 오후 3시 기자회견을 열고 “2015년 예산에 원만한 예산 의결이 되도록 (구성지 의장이) 의원 1인당 20억원을 배정해주도록 제안했다”며 박 부지사의 언급이 사실이라고 재확인했다.
이들은 “더 이상 사실을 숨기는 것은 도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해 모든 사실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며 “(구 의장의 요구사항은) 20억중 10억은 그동안 관행적으로 배정되던 재량사업비 3억3000만원을 상향해달라는 것이었고, 나머지 10억은 의원님들이 선거과정에서 지역에 공약한 사업비 또는 주민요구 사업비 명목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원 지사에게 의회의 요구 사항을 전달하자 지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의원 한 명당 일정액을 배정해 의원이 마음대로 쓰던 소위 재량사업비는 과감히 없애라고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이제 모든 것이 밝혀진 만큼 감정적 대립을 멈추고 도민의 혈세인 예산이 도민이 요구하는 곳에 법과 원칙을 지켜가면서 예산이 쓰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말 도와 도의회가 벌이는 ‘20억 요구설’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에 도민사회가 냉소를 보내면서 제주도와 의회를 향한 ‘예산개혁’ 목소리는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제주=주미령 기자 lalijoo@kmib.co.kr
제주도-의회 의원공약 민원사업 '20억원 협상' 파문
입력 2014-12-23 2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