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동진(東進)’이 동북아 정세에 미묘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러시아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미국으로선 러시아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가 달갑지 않다. 동북아의 맏형인 중국 역시 역내 위상 약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러 간 이니셔티브(주도권) 선점 다툼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내년 5월 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식에 남북정상을 보란 듯이 초청하며 남북간 중재자를 자처했다. 미국·유럽의 대(對)러시아 제재로 정치적·경제적 궁지에 몰리자,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푸틴 대통령은 북핵에 대해선 단호한 입장을 취하며 남한과 보조를 맞추면서도, 북한과는 전통적 동맹관계를 강조하며 친밀함을 유지하고 있다. 결빙된 남북관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가 적기에 ‘대화 카드’를 제시한 셈이다.
이를 바라보는 미·중의 시선은 매우 복잡하다. 일단 미국은 러시아의 동진으로 북·중·러 또는 남·북·러 밀착관계가 형성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 관계 강화에 몰두할 것이란 전망이다. 아울러 대북 공세정책을 더욱 강경하게 가져갈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여기에는 북한의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소니) 해킹사건과 영화상영시 테러 협박이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시민의 기본권이 침해·위협 당했다는 인식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문제까지 검토토록 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러시아의 동진을 바라보며 대북압박 기조만으로는 안 된다는 흐름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북·미 양자대화 필요성이 미국 행정부내에 일정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대북 유화정책으로 선회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외교가 안팎의 평가다.
대북 전문가들은 미국보다는 중국이 러시아의 동진에 더 기민하게 대응할 것으로 본다. 동북아의 ‘맏형’으로서 가져왔던 한반도 영향력이 일정부분 감소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현상유지 차원에서 벗어나 내년 들어 고위급 교류 등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현재 중국은 서방의 경제제재, 유가하락에 따른 금융 혼란을 겪는 러시아에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며 ‘구원투수’로 나서고 있다. 미국에 맞서 정치·경제적 협력관계를 가져가면서도 한반도 주도권을 둘러싸고는 미묘한 긴장구도가 형성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 같은 미·중·러의 주도권 다툼 속에서 우리 정부도 남북관계 주도권을 가져갈 기회를 잘 살려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용석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22일 “북한은 중·러의 경쟁상황을 활용해 외교적 고립감을 탈피하려 할 것”이라며 “우리 정부도 미국과 함께 한 방향으로만 대북정책을 가져가지 말고 중·러도 적절히 이용해 남북관계 주도권을 뺏기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
[이슈분석]한반도 이니셔티브 잡기 위한 미중러의 경쟁
입력 2014-12-22 1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