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보다 해외 투자환경이 더 좋아지면서 해외생산에 의존하는 국내 기업의 증가율이 일본·미국 등 경쟁국보다 7배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인건비가 국내보다 저렴한데다 기업 투자를 주춤하게 하는 규제와 부실한 사회적 인프라가 원인이다. 이런 이유로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진행되면서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 상실되는 ‘도넛경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도넛경제란 1980년대 미국 제조업 공장들이 해외로 떠나면서 경제성장의 핵심 엔진이 사라진 것이 마치 구멍이 뻥 뚫린 도넛 모양과 같다는데서 유래된 용어다.
21일 대한상의가 최근 300여개 국내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우리기업의 해외투자실태와 시사점 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우리나라의 해외직접투자 유출 증가율은 8.2%로 일본·미국(1.2%)보다 훨씬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생산의 경우 한국은 해외생산이 51%로 일본(42%)보다 높고, 가전제품도 약 80%로 역시 일본(44.9%)보다 해외생산 의존도가 높았다. 최근 해외시장 개척과 국내 노동단가 상승 등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제조업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해외진출 기업들은 국내 투자환경 만족도를 100점 만점에 61.3점, 해외 투자환경 만족도는 69.1점을 주어 국내가 해외에 비해 7.8점 뒤진다고 응답했다. 부문별로 인력운용 만족도는 국내공장 56.6점, 해외공장 73.5점으로 16.9점 차이나 났다. 판로개척은 14.6점, 원부자재 조달은 9.8점, 제도 및 인프라는 6.0점 각각 국내 환경이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상품1단위를 만드는데 드는 인건비인 단위노동비용의 경우 지난 10년간(2002~2011년) 미국(-14.3%) 일본(-30.2%) 독일(-2.5%) 등 선진국은 하락한 반면, 한국은 상승(1.8%)했다. 중견 패션기업 A사는 2000년대 들어 국내 투자는 중단한 상태다. 회사 관계자는 “옷은 기계가 만들지 못하고 사람이 만든다”며 “국내 노동단가로는 해외 수출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조동철 KDI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가 성장하고 임금이 상승함에 따라 우리 기업들이 해외투자를 늘려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추세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특히 인력운용, 판로개척뿐 아니라 제도·인프라 항목에서도 우리가 뒤처져 있다는 것은 정책 당국이 주목해야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제조업 공동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과제를 묻는 질문에 기업들은 제조업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지원 확대(58.2%), 규제개혁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56.2%), 노동부문 구조개선(37.1%) 등을 꼽았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10년 전에는 기업이 국내에 1000달러 투자할 때 해외투자는 93달러 정도였지만 지금은 1000달러 당 270달러를 해외에 투자할 정도로 경제 도넛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제조업의 국내 투자여건을 잘 조성해 내수위축을 막고 성장의 추진력을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
“국내보다 국외 투자환경 좋다” 국내 기업 해외생산 증가율 日·美의 7배
입력 2014-12-21 2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