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한공 '땅콩 리턴' 논란을 계기로 직장 내 막말 문화를 짚어보니 생각보다 심각했다.
드라마 '미생'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얻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직종을 막론하고 어느 곳에서나 '마 부장'과 같은 막말 상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2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사회 초년병인 20∼30대 직장인들이 직장 상사로부터 적잖은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공업 계열 대기업에 근무하는 박모(32)씨는 회식 자리에서 때아닌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박씨는 당시 회식 자리가 시끄러워서 '너는 부서 막내이니 끝자리에 앉아라'라는 부서장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잠시 주춤했다.
그러자 그 부서장은 "중역이 말하는 데 집중 안 하는 건 범죄야, 새×야"라고 막말했다.
이후 부서장은 2차, 3차 술자리에서도 계속 박씨를 '범죄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건설 대기업의 해외 현장에서 일하는 이모(35)씨는 맞교대 선임에게서 들은 욕설을 떠올리면 당장에라도 사표를 던지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주간 근무자인 선임은 야간 근무자인 이씨에게 주간 근무에 해야 할 일을 떠넘기고서 다음날 이씨가 그 일을 다 하지 못하자 "그것도 못 끝내고 뭐 하고 있었냐. 아니 씨×, 그럼 이 일은 누가 하라고. 넌 뭐 하는 놈인데. 꺼져 개××야"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IT계열 업체에 다니는 김모(33)씨는 회사 대표로부터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당시 김씨가 속한 팀이 실수하자 회사 대표는 팀 사무실로 와 칸막이에 턱을 괴고는 "이 새×야 왜 말을 못 알아먹어. 우리 집에 있는 개도 너보다 말을 잘 들어"라고 막말을 했다.
막말 상사는 공공기관이라고 예외가 없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에 다니는 A씨는 '악질 상사'만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그 상사는 부하 직원들에게 '개××', '병신××'라고 욕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리에 없으면 자신의 상사에게도 서슴없이 욕한다.
A씨는 "나한테 욕하는 것이 기분이 나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 욕하는 것을 듣는 것도 불안한 느낌이 든다"며 "문화부 소속 공무원이면 더 문화적이고 교양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여성에게는 막말뿐 아니라 성희롱까지 동반한다.
증권사에 다니는 B씨(28·여)는 상사로부터 일을 잘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너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내가 왜 널 뽑았냐. 차라리 얼굴 예쁘고 몸매 쭉빵인 여자 앉혀서 일 시키지"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다.
대학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C씨(25·여)는 신입직원 환영회 때 교직원인 상사가 던진 농담에 화가 났다.
당시 상사는 "대학원생 꾀어서 결혼하려고 여기 들어오는 여자애들 많은데 너희는 그러면 안 된다. 일만 해라"라며 여성을 폄하하는 발언을 했다.
최근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008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폭언을 들은 경험을 조사한 결과도 상황은 비슷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직장 상사 등으로부터 막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직장인들이 10명 중 7명 꼴(68.2%)로 나타났다.
직장인들이 가장 불쾌감을 느낀 폭언은 '머리는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느냐'는 인격모독적인 말(29.3%)이었다.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는 식의 상대방을 무시하는 호통(24.8%), '이걸 완성본이라고 들고 온 거야' 등과 같이 자신이 한 일을 비하하는 발언(22.3%)도 직장인들이 참기 힘들어 했다.
응답자의 33.3%는 직장 내 폭언 때문에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고 답했다.
하지만 응답자 3명 중 2명 꼴(65.1%)은 이런 폭언에 '그냥 참고 넘어간다'고 밝혔다.
임정선 서울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언어폭력 피해는 눈에 보이지 않아 피해를 본 사람이 개인적으로 해결하려 하고 가해자도 '너가 민감하다'는 식으로 넘어가려 한다"며 "피해자가 개인적으로 해결하려다 보면 장기적으로 불안, 우울, 수면장애, 정서 장애 등 장애를 겪게 된다"고 우려했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
직장내 막말 문화 심각…이런 말 듣고 참어 말어?
입력 2014-12-21 15:23 수정 2014-12-21 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