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 올해의 사자성어

입력 2014-12-21 06:31 수정 2014-12-22 11:14
‘지록위마’(指鹿爲馬)가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혔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부른다는 의미로, 남을 속이고 옳고 그름을 바꾸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교수신문은 지난 8~17일 전국의 교수 7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201명(27.8%)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를 선택했다고 21일 밝혔다.

지록위마는 사기(史記) 진시황 본기에 나오는 사자성어다.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가 태자 부소를 죽이고 어린 호해를 황제로 세워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조고가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좋은 말 한 마리를 바칩니다”라고 거짓말한 것에서 유래했다. 호해는 “어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오”라며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고, 조고는 이후 호행게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을 기억해 두었다가 죄를 씌워 죽였다고 한다.

지록위마를 추천한 곽복선 경성대 중국통상학과 교수는 “2014년은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뀐 한 해”라며 “온갖 거짓이 진실인양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구사회 선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 정윤회의 국정 개입 사건 등을 보면 정부가 사건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민 제주한라대 간호학과 교수는 “정치계의 온갖 갈등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대통령 스스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교수들이 지록위마 다음으로 선택한 사자성어는 ‘삭족적리’(削足適履)였다. 170명(23.5%)이 선택했다. 삭족적리는 ‘발을 깎아 신발을 맞춘다’는 뜻으로 합리성을 무시하고 억지로 적용하는 것을 비유한다. 박태성 부산외대 러시아·중앙아시아학부 교수는 “원칙 부재의 우리 사회를 가장 잘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3위는 ‘지통재심’(至痛在心)이었다. 교수 147명(20.3%)이 선택했다. 우암 송시열의 ‘지통재심(至痛在心),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는 글에서 따왔다. ‘지극한 아픔은 마음에 있고,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는 의미다. 지통재심을 추천한 곽신환 숭실대 철학과 교수는 “세월호 사건이 우리의 마음에 지극한 아픔으로 남아 있다”며 “정치 지도자들이 지녀야 할 마음자세”라고 말했다.

‘세상에 이런 참혹한 일은 없다’는 뜻의 ‘참불인도’(慘不忍睹)가 146명(20.2%)의 선택으로 4위, 여러 갈래로 찢겨지거나 흩어진 상황을 가리키는 ‘사분오열’(四分五裂)이 60명(8.3%)으로 5위를 각각 기록했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교수들의 전공, 세대, 지역을 안배한 추천위원단이 사자성어 36개를 추천한 뒤 교수신문 필진과 명예교수들이 5개를 추려내 전국의 교수를 대상으로 설문하는 방식으로 선정됐다.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한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를 선정하는 설문조사를 실시해왔으며, 지난해에는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의 ‘도행역시’(倒行逆施)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혔다. 2012년에는 ‘온 세상이 모두 탁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 있기 힘들다’는 의미의 ‘거세개탁’(擧世皆濁)이 올해의 사자성어였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