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정 '유출 경위서'도 조작-비선실세 의혹 '박관천 스캔들'로 마무리 국면

입력 2014-12-19 02:00
국민일보DB

검찰이 ‘정윤회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48) 경정에 대해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청와대 내부 문건을 빼돌려 감춘 행위에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및 공용서류은닉죄를 적용했다. 여기에 무고죄를 추가했다. 박 경정이 작성해 청와대에 올린 ‘문건 유출경위서’마저 날조됐다는 것이다.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은 경정 계급의 경찰공무원 한 명이 허위 문건을 만들어 보고하고 전파하면서 불거졌던 ‘스캔들’로 마무리되고 있다.

◇문건 유출경위서도 조작…무고죄 추가=검찰은 박 경정이 작성한 ‘BH(청와대) 문건도난 후 세계일보 유출 관련 동향’ 보고서가 조작된 것으로 결론 냈다. 박 경정은 세계일보가 지난 4월 청와대 문건 일부를 보도한 이후 자신이 유출자로 의심받자 이 경위서를 만들었다. 경위서는 조응천(52)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오모 전 행정관을 거쳐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까지 보고 됐다. ‘민정수석실 파견 경찰관이 문건을 몰래 복사해 대검수사관 등을 거쳐 세계일보 조모 기자에게 전달됐다’는 내용이었다. 박 경정은 유출에 개입한 5명을 지목하며 처벌도 요청했다.

검찰은 박 경정 자신이 최초 유출자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가공의 유출 경로를 임의로 만들어 낸 것으로 파악했다. 박 경정이 ‘대면접촉’한 결과라고 적시한 내용 역시 허구로 조사됐다.

◇“박지만 미행 보고서, 수사팀도 황당해”=검찰은 박 경정이 작성해 박지만(56) EG 회장에게 전달한 ‘미행 보고서’에 등장하는 3명을 지난 17일 모두 불러 조사했다. 박 경정은 보고서에서 경기도 남양주의 유명카페 사장 아들을 ‘미행자’, 전직 경찰관과 카페 사장 최모씨를 ‘미행설 유포자’로 지목했다. 박 경정의 정보 확인작업은 자신이 남양주경찰서 형사과장으로 있을 때의 부하직원에 전화를 걸어 “최씨 아들이 (요즘도) 오토바이를 타는지 알아봐 달라”는 게 전부였다. 부하직원은 “타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박 경정은 ‘경찰관에게 미행 정보를 입수해 경찰관 소개로 미행자를 직접 면담했다’는 식으로 보고서를 썼다. 등장인물 3명은 “미행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진술했고, 검찰 수사에서도 최씨 아들은 당시 미행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보고서 내용을 확인하면서 수사팀도 황당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박 경정에 대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검토하고 있다.

◇왜 무모한 일을 벌였을까=박 경정은 자신이 한 일을 ‘사명감’ ‘업무의 일환’ 등으로 설명해 왔다. 하지만 경찰공무원으로서 가공의 미행설까지 만들어 대통령의 동생과 가신(家臣) 그룹을 갈라서게 하려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은 범행 동기를 파악하는 데 있어 ‘정윤회 문건’(지난 1월 6일)이나 ‘미행 보고서’(3월 말)가 작성된 시기에 주목한다. 박 경정의 상관이었던 조 전 비서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박 경정을 ‘내가 가진 가장 날카로운 이빨’로 표현할 정도로 신뢰했다. 박 경정은 지난해 4월 청와대로 파견됐다가 10개월 만인 지난 2월 경찰로 좌천성 발령이 났다. 조 전 비서관은 박 경정의 복귀를 막아보려 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장 자리로 발령을 내 외곽지원을 받으려던 계획도 무산됐다. 공직기강비서관실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힘의 무게추가 민정비서관실로 옮겨간 것은 박 경정이 경찰로 복귀한 시점부터다.

두 문건은 박 경정의 발령 직전과 이후에 작성됐다. 박 경정이 본인 뜻대로 인사가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자 ‘행동’에 들어갔을 수 있다. 이후에는 인사 조치에 불만을 품고 일을 벌였을 수도 있다. 박 경정은 언론 인터뷰에서 “문고리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때문에 인사 불이익을 겪었다. 정윤회가 이들을 통해 그림자 권력 행세를 한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두 문건 역시 정씨와 3인방을 겨냥한 내용이다.

검찰은 박 경정의 ‘배후’가 있는지도 확인 중이다. 박 경정도 지난 16일 검찰에 체포되기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 “조 전 비서관이 민감한 일을 다 시켰다”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은 시간이 갈수록 박 경정과 거리를 두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 경정이 미행보고서를 작성했는지에 대해 아는 바 없다”는 글을 올렸다.

지호일 이경원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