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정당해산심판 선고문 검토 긴장… 정당의 한계에 대한 가이드라인 설정되나

입력 2014-12-18 17:18

헌법재판소가 19일 다시 한번 정쟁(政爭)의 한가운데 서게 됐다. 그동안 첨예한 정치적 사건에서 심판자 역할을 해왔던 헌재는 유례없는 정당해산심판 선고를 하루 앞두고 결정문 최후 검토 작업에 골몰했다. 헌재 밖 곳곳에서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둘러싼 시민단체들의 집회가 이어지며 긴장감이 감돌았다.

헌재의 이번 선고는 정당이 반드시 지켜야할 민주적 기본질서의 테두리를 처음 확인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1960년 제2공화국헌법에 정당해산 관련 조항이 신설됐지만 이 조항에 따라 정당이 심판을 받은 적은 없었다. 정당해산 조항 자체가 ‘정당해산’보다 ‘정당보호’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정당에 대한 아무 규정이 없었던 제1공화국 시절 이승만 정권은 정당해산을 무기삼아 야당을 탄압했다. 1958년 조봉암의 진보당 해산 사건이 대표적이다. 정당해산 조항은 이에 대한 반성으로 신설됐다.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정당을 함부로 해산할 수 없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 조항은 ‘동전의 양면’처럼 정당의 한계를 규정하기도 한다. 헌재 관계자는 18일 “정당 한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설정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헌재는 과거에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마다 ‘심판자’ 역할을 해왔다. 2004년 3월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이 헌재 판단에 넘겨졌다. 야당이던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이 정치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며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헌재가 사건을 심리하는 동안 대통령 권한은 정지됐다. 헌재는 두 달간 집중심리를 벌여 같은 해 5월 탄핵소추안 기각 결정을 내렸다.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도 헌재의 판단을 받았다. 헌재는 2004년 10월 “헌법으로 규정해야 할 사안을 법률로 정했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 선고가 지니는 정치적 파급력만큼 헌재 주변에는 이날 내내 긴장감이 감돌았다. 9명 재판관이 마지막 결정문 검토 작업을 벌이는 동안 헌재 정문 앞에서는 통진당 학생위원회 소속 대학생들이 시국선언을 갖고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반대’를 주장했다.

헌재 정문을 지키는 경찰 병력은 8명에서 70여명으로 늘어났다. 경찰버스 13대가 헌재 주변 차도에 촘촘히 배치됐다. 인근 현대 사옥 맞은편에서는 이정희 대표를 비롯한 통진당원들이 정당해산심판을 규탄하는 108배를 진행했다. 19일 헌재 주변에선 보수단체와 진보단체의 대규모 집회와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어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현수 양민철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