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 김모(29·여)씨는 지난해 여름 취업 알선 사이트를 뒤지다 ‘20대 여성 비서를 뽑는다’는 채용 공고를 봤다. 여러 차례 취업에 실패하며 낙심해 있던 차였다. 그해 6월 12일 인천의 한 커피숍에서 해당 회사의 ‘재무이사’를 만났다. 깔끔한 외모에 고급 외제차를 타고 온 재무이사는 “대출을 받아 우리 회사를 통해 투자하면 이익금을 주고, 대출도 대신 갚아 주겠다”는 제안을 해 왔다.
김씨는 홀린 듯 그에게 1억원을 건넸다. 그러나 그 이후 회사에서는 이렇다 할 연락이 없었다. 사무실 번호도, 휴대전화도 연결되지 않았다. 사실 이 회사는 존재하지조차 않는 곳이었다. 김씨는 취업은커녕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모아온 돈만 날렸다.
김씨에게 이사 명함을 내민 백모(32)씨는 사실 사기 전과가 있는 백수였다. 백씨는 2010년 교도소에서 만난 전 은행 지점장 박모(50)씨와 범행을 공모했다. 박씨는 2005년 청와대 비자금 세탁에 연루돼 66조원을 이체한 혐의로 실형을 살고 있었다. 여기에 백씨에게 5000만원의 사기 피해를 당했던 배모(27·여)씨가 피해금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합류했다.
백씨 등은 ‘○○에셋’ ‘○○프라임’ ‘○○인베스트먼트’ 등 가짜 회사 이름으로 구직사이트에 채용 공고를 냈다. 범행 대상은 학자금과 생활자금 대출 등으로 고민하는 젊은 여성으로 잡았다. 백씨는 외제차를 몰고 고급 미용·의상실을 드나들며 피해자들을 안심시켰다. 일부 피해자들에게는 연인 관계가 된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며 돈을 뜯어냈다.
이들은 “투자해주겠다”며 돈을 받은 뒤 처음 1~2달은 이자를 지급하다 달아나는 방법으로 25명에게서 8억7000만원을 가로챘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백씨와 박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배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7일 밝혔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
취업난 심해지니 사기도 기승…“취업 시켜줄 테니 투자해라” 20대 구직자 울린 일당 덜미
입력 2014-12-17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