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초등학교 2학년의 시험문제입니다. 한번 풀어볼까요?
1. 오른쪽 부분으로 잴 수 있는 길이로 가장 알맞은 것은 어느 것입니까?
① 지우개의 길이
② 휴대폰의 길이
③ 자동차의 길이
④ 냉장고의 높이
⑤ 책상의 긴 쪽의 길이
여기서 ‘오른쪽 부분’이란 문제 옆에 그려진 그림을 말합니다. 오른손으로 ‘한 뼘’을 표시하는 손 모양입니다. 뼘으로 잴 수 있는 길이를 고르는 문제인 거죠.
정답은 뭘까요? 일단 2번은 아닙니다. 이 문제를 풀었던 학생이 2번을 골랐는데 빨간 펜으로 줄이 그어졌거든요. 그럼 지우개일까요? 크기가 작긴 하지만 ‘반 뼘’이라는 단위도 있으니까요. 자동차나 냉장고? 도전해 본 적은 없지만 손으로 재는 게 아예 불가능할 것 같진 않습니다. 네티즌들은 ‘가장’ 알맞은 것을 고르라고 했으니 5번이 유력하다고 얘기하네요. 하지만 책상만큼 작은 냉장고도 있지 않나요?
16일 페이스북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문제는 한 블로거(ch*****)가 자신의 아이의 시험지를 직접 찍어서 올린 것입니다. 해당 블로거는 “초등학교 2학년에게 이런 시험을 보는 목적이 무엇일까요”라고 물으면서 여러 장의 이미지를 첨부했습니다. 글의 제목은 ‘상상력이 고갈되는 교육’이라고 달았죠.
사진 속 문제들은 쉬운 듯 아리송합니다. ‘아는 사람을 소개하는 글을 쓰는 경우로 알맞지 않은 때는 언제인가’라는 문제를 볼까요.
① 우리 가족에 대해 친구들에게 말할 때
② 처음 만난 사람을 내 친구에게 소개할 때
③ 어머니께 나의 가장 친한 친구를 소개할 때
④ 책을 보고 잘 알게 된 사람에 대해 소개할 때
⑤ 내 주변의 잘 아는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답은 ‘처음 만난 사람’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2번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보기들도 어쩐지 애매합니다. ‘아는 사람’의 정의는 또 무엇인가요. 머리가 아파옵니다.
소개하고 싶은 사람의 모습과 성격을 쓰라는 주관식 문제도 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짝이 말이 없고 생각 깊다고 적었습니다. ‘모습은 항상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썼네요. 이 문제도 틀렸다고 표시돼 있습니다. ‘항상’이라는 단어에는 엑스(X) 표시도 있습니다.
글쓴이가 아이에게 틀린 이유를 물으니 “간단히 쓰라고 했는데 문장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합니다. 에이, 설마요. 사실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이었던 걸까요? 아니면 생김새를 묘사하지 않아서일까요?
문제를 풀어본 네티즌들은 “객관식이 뭐 이렇게 애매해” “문제들이 황당하고 어이없네요” “정말 우리나라 교육을 어찌해야 하나” 등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래서 정답이 뭐냐”며 답을 두고 갑론을박도 벌어졌습니다. 해당 글은 페이스북에서 1만8000개 이상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교사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저 문제는 많은 교사들도 교사용 참고자료에서 보고 비판했던 문제”라며 “저 문제가 잘못된 건 인정하지만 열심히 연구하는 교사들까지 싸잡아 욕먹는 현실이 애석하다”라고 적었습니다. 이어 “저 문제가 나온 교과서 단원에는 아이들이 교실을 돌아다니며 팔로 1m를 재보고, 짝이랑 10cm씩 어림해서 1m인 줄자를 만들어보고, 운동장 나가서 발걸음을 직접 세보고 둘레를 어림하는 창의적인 수업이 더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답이 존재해야 하는 시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국어시험을 볼 때 글쓴이의 목적이나, 시적 화자의 마음을 대변하는 시어를 찾는 것도 정답을 위한 정답입니다. 글쓴이의 의도는 글쓴이만 알고 있으니까요.
다만 네티즌이 안타까웠던 건 어린 아이에게 일방적인 답을 강요하는 교육현실이었습니다. 문제의 의도를 이해하고 답을 납득하는 과정도 중요한 교육이니까요.
한 네티즌의 댓글이 재밌습니다. “나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전화벨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를 쓰라는 답변에 무르릅 무르릅이라고 썼는데 정답이 따르릉이라고 틀렸대요. 난 그렇게 들리는데.” 적어도 이런 문제는 ‘들리는 대로 쓰시오’라고 출제되면 좋겠네요.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친절한 쿡기자] 뼘으로 잴 수 있는 길이로 알맞은 것은?
입력 2014-12-16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