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75년전 개봉 당시 인종차별

입력 2014-12-16 15:23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75년 전 미국 애틀랜타에서 첫 시사회를 개최할 당시 흑인 배우들에 대해 인종차별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에모리대학 영화학과 매튜 번스타인 교수가 이 영화의 제작자인 데이비드 셀즈닉의 자료 보관소를 조사한 결과 1939년 12월 15일 열린 시사회에 흑인 출연 배우들을 참여시키는 문제를 놓고 셀즈닉과 애틀랜타시 관리들 사이에 상당한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번스타인 교수는 “제작자인 데이비드 셀즈닉은 해티 맥대니얼이 애틀랜타 시사회에 초청을 받지 못할까 당황해했다”면서 “그는 그녀가 (참석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고 말했다.

맥대니얼은 이 영화에서 비비언 리가 맡은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하녀 매미 역으로 출연해 1940년 흑인 배우로는 최초로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당시 애틀랜타 시장인 윌리엄 B. 하츠필드는 셀즈닉에 직접 접근해 이 영화의 첫 시사회 장소를 애틀랜타로 유치했지만 인종차별법 때문에 흑인 배우의 시사회 참여는 허용되지 않았으며 흑인 배우는 영화 홍보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맥대니얼은 이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시사회에는 참여했다.

번스타인 교수는 “셀즈닉은 유대인으로 1930년대 말 유럽에서 나치 체제하의 유대인들이 받는 박해에 대해 유념하고 있었다”면서 “그는 이 박해와 특히 남부에서의 짐 크로 법(인종차별법)에 따른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 사이에 유사성을 봤다”고 지적했다.

번스타인 교수는 오스틴의 텍사스대학 해리 랜섬 센터에 보관 중인 셀즈닉과 스태프들이 주고받은 메모와 편지, 전보 등을 수년간 조사한 결과 셀즈닉이 애틀랜타시 관리들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도 밝혀냈다.

하지만 셀즈닉의 조수 겸 줄거리 편집자인 캐서린 브라운은 시사회를 일주일 앞둔 8일 셀즈닉에게 보낸 편지에서 흑인 출연 배우들을 시사회장에 참석시키기 위한 노력을 중단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반면 흑인 배우들에 대한 애틀랜타시의 이러한 차별과 달리 현지 흑인 단체들은 시사회가 열린 날 밤까지 다채로운 행사를 열었는데 흑인 인권운동의 대명사인 마틴 루서 킹 목사도 이에 참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번스타인 교수는 “이 축제들과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것은 마틴 루서 킹이 10세의 나이로 자선무도회 무대에 서서 (스칼렛 오하라가 소유한 대농장인) 타라의 모형 앞에서 노예복장을 하고 에벤에셀 침례교 성가대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고 밝혔다.

마틴 루서 킹 기념센터의 스티브 클라인 대변인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라며 이 사실을 확인했다.

남호철 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