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안 열려. 여기 갇힌 것 같아. (…) 숨을 못 쉬겠어.”
지난 13일 발생한 JTBC 드라마 ‘하녀들’ 촬영장 화재로 숨진 스태프 염모(35·여)씨의 구조요청은 염씨의 생애에서 마지막 목소리가 됐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연합뉴스는 경기도 연천군 드라마촬영장 화재사건을 수사 중인 연천경찰서는 염씨가 불이 난 사실을 알아채고 동료에게 전화해 구조요청을 했다고 15일 밝혔다.
염씨의 형부 박모(45)씨는 이날 염씨가 친구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내용을 연합뉴스에 공개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박씨 지난 13일 낮 친구와 통화 중이던 염씨는 오후 1시 16분쯤 “밖에 불났나봐”라고 최초로 말했고 친구는 염씨에게 전화를 끊고 119에 신고하라고 얘기했다.
곧이어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 염씨는 “나 못 나가. 문이 안 열려. 여기 갇힌 것 같아. 연기가 들어와서 숨쉬기 힘들어. 숨 막혀”라고 얘기했다. 이어서 오후 1시 31분쯤 걸려온 전화에서는 “숨막혀, 소방차 왔대”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4분 뒤 “숨을 못 쉬겠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2층에서 혼자 있던 염씨는 화재 사실을 알았지만, 목조로 꾸며진 건물이 순식간에 불타오르는 통에 미처 탈출하지 못한 것이다. 빠른 속도로 피어오른 연기에 염씨는 이내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이날 오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염씨의 사인이 ‘질식사’로 확인됐다는 구두 통보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촬영장 일대 온 하늘이 검은 연기로 뒤덮일 정도로 유독 가스가 심하게 퍼졌다.
인근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대피했고 근처에 있던 노인요양병원에도 한때 비상이 걸렸었다. ‘하녀들’ 제작사인 드라마하우스에 따르면 나머지 스태프와 배우 등 59명은 점심 먹으러 나가 있었다. 또 염씨를 제외한 스태프 13명은 현장에 있었지만, 불이 나자마자 대피해 화를 면했다.
대형 참사로 번질 뻔한 화재는 2층에 혼자 남아 작업 중이던 염씨만을 희생자로 남긴 채 진화됐다.
소방 당국은 최초 불이 난 오후 1시 23분에서 약 3시간 만인 이날 오후 4시 17분, 사다리차를 동원해 내부로 진입한 뒤 염씨 시신을 발견했다. 염씨 시신은 심하게 훼손돼 유전자 감식을 통한 본인 확인까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사흘째인 이날 경찰과 소방 당국은 당초 촛불로 지목됐던 화재 원인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드라마 소품 담당자는 경찰에서 “촬영 때문에 촛불 5개를 켰었으나 나갈 때는 다 끄고 나갔다”고 진술, 사실여부를 조사중이다.
또 경찰은 사망자와 관련해 유가족을 상대로 조사하면서 부적절한 질문을 던져 빈축을 사기도 했다. 박씨는 “전날 조사에서 경찰이 우리 가족에게 ‘원래 (고인이) 혼자 지내는 걸 좋아했냐’는 취지로 질문을 했다”면서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야지 고인을 두 번 죽이는 그런 수사를 하면 되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세트장에 화재 방지나 소방 시설 등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는지를 비롯해 관련 법규 준수 여부 등을 밝히는 수사에서는 일부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연천군은 불이 난 건물이 용도변경을 한 뒤 사용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건물을 사용한 것을 확인, 이날 오전 건물주를 건축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해당 건물주는 원래 섬유공장으로 쓰이던 건물 중 4동에 대해 지난 6월 9일 ‘방송통신시설(촬영소)’로 군청에 용도변경 신청을 했다. 한 달여 뒤인 7월 19일 용도변경이 이뤄졌다. 그러나 4동 중 2동만 사용승인을 받은 상태였다.
규모가 작은 제4동(576㎡)과 제5동(1620㎡)에 대해서는 다음 달인 8월 21일 임시사용승인이 났다. 하지만 규모가 큰 제2동(4500㎡)과 제3동(6940㎡)은 아직 사용승인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불이 난 건물은 규모가 가장 큰 3동이다.
관련 소방시설을 완비해야 소방 당국에서 ‘완공 필증’을 받을 수 있는데 건물이 크다 보니 관련 공사 진행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이를 무시한 채로 촬영을 강행한 것이다. 드라마 ‘하녀들’은 사고가 나기 전날인 지난 12일 첫 방영됐다. JTBC측도 이번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편 화재로 조립식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된 2층짜리 건물을 모두 탔고 뒤쪽에 있는 건물로 번져 외벽 일부가 그을렸다. 재산피해는 3억5000만원으로 소방서는 추산했다.
드라마하우스 측은 “메인 스크립터로 베테랑 프리랜서인 염씨는 평소 책임감이 강해 이날도 현장에 남아 오전 촬영분의 기록을 정리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촬영 도중 불의의 사고로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점에 대해 유족과 온 국민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연천=정수익 기자
'하녀들 불"-"문이 안 열려, 숨막혀" 죽음의 소리
입력 2014-12-15 2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