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진가 박로랑이 포착한 한국인, 장미희 손기정 김기창 등 '파리 코레안' 갤러리나우서 전시

입력 2014-12-13 10:29
장미희
김기창
김중만
손기정
김창열
“내 나이 10살 되던 무렵, 나의 부모님은 카메라 한 대를 나에게 선물로 주셨죠. 나는 가족들과 내 주변의 것들을 찍기 위해 먼저 셔터를 눌렀어요. 18살 때 나는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 시절 프랑스에 거주하던 소수의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이관영 사범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고, 그와의 만남 속에서 알게 된 한국 사람들을 사진 찍기 시작했지요. 상황이 될 때마다 나는 한국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생활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냈습니다.”

외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한국인의 모습을 40년간 찍어온 프랑스 남자가 있다. 사진작가 로랑 바르브롱(63)으로 박로랑이라고 불린다. 로랑은 한국을 사랑하고 태권도를 사랑한다. 한국말도 잘한다. 아내와 며느리 또한 한국인이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갤러리 나우에서 12월 16일까지 열리는 그의 개인전 ‘파리 코레안’에는 프랑스를 방문했던 또는 프랑스에 오래 거주했던 한국인들의 인물 사진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1970~80년대 파리에서 만났던 한국인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로 구성됐다. 외교관, 예술가, 무용가, 운동선수, 요리사, 기업가, 유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전시된다.

“나는 인위적인 포즈의 사진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아요. 사진 작업을 위해 나는 항상 일상 속 자연스러움을 찾아다니죠. 그리고 멈춰있는 모습보다 움직임의 찰나를 더 중요시 여깁니다. 나에게 인물사진이란 여권 속 증명사진이 아닌 피사체의 감정 의식이 반영되어 있는 초상화이거든요.”

그가 만난 한국인은 예술가들이 많다. 빵모자를 쓴 노화가가 벤치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서양 부인이 벤치 끝에 앉아 곁눈질을 한다. 작품명은 ‘198105, 지베르니, 김기창, 화가’. 1981년 5월 운보(雲甫) 김기창(1913∼2001) 화백이 모네의 정원이 있는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서 스케치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선글라스 쓴 노신사가 유럽의 고색창연한 건물 앞에서 달린다. 81년 11월, 베르사유궁에서 그의 카메라에 포착된 마라토너 손기정(1912∼2002)이다. 밖에는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는 손기정은 마라톤을 하듯이 러닝을 한다. 순간의 찰나 포착이 아름답다.

1979년 파리에서 만난 사진작가 김중만이 앳된 얼굴로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모습, 판화가 송번수가 그에게 선물하기 위해 ‘쌍귀정(雙龜庭·거북이 두 마리가 살고 있는 뜰이라는 뜻으로 정원에서 거북이를 키우고 있는 그의 집을 지칭)’이라는 현판을 새기고 있는 모습 등이 카메라에 잡혔다.

특히 송번수 작가는 그의 저택에서 6개월 동안 기거하는 등 인연이 각별하다. 그를 통해 김창열 화백과도 인연을 맺었다. 한복 차림으로 글씨를 쓰고 있는 이응노(1904∼89) 화백과 부인 박인경(90) 화백의 1974년 모습, 허공에 물방울을 그리는 듯한 포즈의 김창열(85) 화백의 1977년 모습 등이 그의 카메라에 찍혔다.

작가는 18세부터 태권도를 배우면서 프랑스에 사는 한인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프랑스에 태권도를 보급한 이관영 사범과 인연이 닿았다. 이번 전시는 김중만의 추천으로 이뤄졌다. 건축가 승효상,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조각가 문신, 미술평론가 이경성,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그의 아내 윤정희, 영화배우 장미희, 화가 한묵, IOC위원장을 지낸 체육인 김운용, 화가 이만익, 걸레 스님 중광 등 파리에서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한국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한국에서 이번에 네 번째 전시를 열어요. 제가 찍은 한국인들의 사진을 김중만 작가가 보고 정말 좋다고 했어요. 이 사진들을 한국 관람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전시를 권유했지요. 김중만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고르고 리터치 작업을 거친 뒤 43점을 내놓게 됐어요. 제가 찍은 한국인 사진의 10분의 1도 안돼요.”

태권도 모국인 한국에 큰 관심을 갖게 된 후 처음엔 태권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고, 이후엔 프랑스에서 만난 한국인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일상생활 모습을 찍게 됐다. 이 결과로 40여 년 간 한국을 오가며 포착한 일상을 담은 사진집 ‘봉주르 코레’를 2013년 발간하기도 했다.

작가는 스튜디오 사진을 찍지 않는다. 연출된 포즈와 상황이 싫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을 때 대상자에게 절대로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포착하는 걸 가장 좋아한다. 그는 “연출된 사진엔 추억이 담기지 않지만 자연스러운 사진엔 당시의 추억과 인연이 찍힌다”고 말했다.

그가 추구하는 사진은 재미있고 마음이 담긴 것이다. 사진 찍을 때 재미가 없으면 찍지 않는다. 그리고 진정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진 찍을 때 중요한 건 카메라가 아니라 즐기는 마음이라는 얘기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아무 감정 없이 찍는다면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사진을 찍는 건 손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이기 때문이다(02-725-293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