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린 75일간의 홍콩 시위… 젊은 세대 민주화에 눈뜨게 한 ‘절반의 성공’

입력 2014-12-11 16:45
AFPNNNews=News1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 철회를 요구하며 시작된 도심 점거 시위가 11일 막을 내렸다. 지난 9월28일 행정장관 선거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시작된 75일간의 긴 여정이 마무리됐다. 시위대가 경찰의 후추스프레이를 우산으로 막아내 ‘우산혁명’으로 불렸던 이번 시위는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했지만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 세대의 눈을 뜨게 만들며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새로운 형태의 시위 시작=홍콩 법원 집행관들은 11일 오전 10시30분(현지시간)부터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위의 주무대인 애드머럴티 지역에서 각종 시위 용품들과 현수막, 텐트 등을 철거했다. 홍콩 고등법원이 지난 1일 일부 버스회사의 요구를 받아들여 애드미럴티에 대한 점거해제 명령을 내린데 따른 것이다. 대부분의 시위대들은 강제 철거 작업에 저항 없이 순순히 응했다. 마지막까지 수백명이 버텼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끝까지 남아 있던 클로디아 홍콩 민주파 입법회 소속 모 의원은 “이것이 우리 싸움의 끝이 아니다”고 외쳤고, 앨리스라는 이름의 한 대학생도 “우리는 지치지 않았고 앞으로도 지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수천명의 시위대들은 도심에서 마지막 밤을 함께 했다. 민주파 의원 23명도 동참했다.

대규모 도심 점거 시위는 막을 내렸지만 새로운 형태의 민주화 시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강제 철거 전날 밤 홍콩 중심가에서는 ‘쇼핑 투어’라는 이름의 시위가 처음 시작됐다고 사우스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이 시위대에 막힌 홍콩 경제를 위해 ‘쇼핑’을 주문하자 ‘실천’에 옮긴 것이다. 이날 200여명의 시위대들은 무리를 지어 상가를 돌며 쇼핑을 뜻하는 광둥어 ‘가우우’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중문대 리랍펑 교수는 “새로운 형태의 불복종 운동이 전개될 것”이라며 “극단적인 양상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기기 힘들었던 게임…미래에 대한 희망은 성과=홍콩 민주화 시위는 한때 하루 10만명 이상이 모이는 등 열기가 고조되면서 ‘혁명’이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장기화되면서 시위대 내부의 피로감이 누적되고 홍콩 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시민들의 지지는 줄어들었다. 이런 가운데 시위 지도부는 대학생과 중·고등학생, 시민 단체로 나뉘어 시민들의 민주화 열기를 하나로 엮어내는 데 실패했다.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의 강경 대응 방침을 뚫기는 애초부터 힘들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홍콩 시위가 홍콩 시민의 패배, 중국의 승리로만 기록될 수는 없다. 미국 서던메소디스트 대학 링 스아오 교수는 최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에 ‘중국이 홍콩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졌다’는 제목의 기고를 통해 “중국의 강경 기조가 홍콩 젊은이들에게 중국과 중국 유산을 완전히 부정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홍콩중문대의 조사 결과, 18세 이상 홍콩 시민 중 8.9%만이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인’이라고 답했다. 대학학생회 연합체인 홍콩전상학생연회 알렉스 차우 비서장은 “이번 시위의 가장 큰 성공은 사람들을 일깨워줬다는 것”이라며 “젊은 세대가 개혁의 엔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대만의 민심도 잃었다. 홍콩의 시위 사태를 지켜본 대만 국민들은 지난달 29일 시행된 지방선거에서 친중(親中) 노선의 국민당에게 참패를 안겼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