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씨를 둘러싼 검찰수사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십상시(十常侍) 게이트,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이라는 지적이 쏟아졌지만 검찰은 의혹 자체가 허위라는 결론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민들 머릿속에는 오랜 기간 잔상이 강하게 남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그림자 측근과 대통령 친동생의 권력암투설, 청와대 내부보고서 유출, 십상시의 존재 여부, 고위 관료들의 상호 폭로전 등…. 이미 국민들은 비선실세 혹은 권력형 게이트를 경험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비선실세 의혹은 이전 정부에서도 늘 문제가 됐다. 공통점은 우선 등장인물이다. 친인척 혹은 측근이 주연이다. 이들은 ‘권세’를 나타내는 그럴듯한 별명과 두고두고 회자되는 ‘어록’을 남겼다.
이번 파문의 중심에는 정씨와 ‘십상시’로 불리는 청와대 비서관 등 측근 그룹이 자리 잡고 있다. 십상시는 중국 후한 말 정권을 농락한 환관 10명을 말하는데, 이 자극적인 명칭이 의혹을 키우는데 한몫했다. 정씨는 검찰에 출두하면서 기자들에게 “엄청난 불장난을 누가했는지, 불장난에 춤춘 사람들이 누구인지 밝혀질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정치권에서는 즉각 ‘불장난’이라는 표현이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11일 KBS라디오에 출연해 “불장난이라는 단어까지 썼는데 좀 섬뜩하다”며 “그 표현이 혹시나 부메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든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비선실세 논란과 관련해 지난 8일 새누리당 지도부와 오찬자리에서 “실세는 청와대 진돗개”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앞선 이명박정부에서는 ‘모든 일은 형을 통한다’는 뜻이 담긴 ‘만사형통’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왕차관’ 박영준 전 차관이 비선실세였다. 두 사람 모두 인사 및 국정개입 의혹을 받았고, 불법정치자금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노무현정부시절에는 ‘봉하대군’ 노건평씨와 ‘우(右)광재’로 불린 이광재 전 의원이 있었다. 건평씨는 각종 이권 개입 잡음이 끊이질 않았는데 노 전 대통령이 “순진한 형을 이용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평생 숙명의 라이벌이었는데, 아들 문제로 나란히 대국민 사과를 했다. 김대중정부에서는 대통령 삼형제를 일컫는 ‘홍삼트리오’ 김홍일·홍업·홍걸씨가 기업들로부터 청탁을 받는 사고를 쳤다. 홍업·홍걸씨는 ‘이용호·최규선 게이트’로 구속됐다. 홍업씨는 ‘100%해결사’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기도 했다.
김영삼정부 역시 대통령 차남인 현철씨가 비선실세였다. 현철씨는 ‘소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국정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청와대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가 그를 거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노태우정부에서는 ‘6공 황태자’라 불린 박철언씨가 국정농단의 배후로 지목됐다.
정윤회씨와 십상시 파동이 이전 정부의 비선실세 개입의혹과 다른 차이점도 있다. 바로 ‘그림자 실세’라는 정씨의 별명이다. 그림자처럼 뭔가 실체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없다. 유출된 청와대 내부 문건에 따르면 정씨는 대통령 최측근 비서진을 쥐락펴락하고, 대통령 친동생과 권력암투를 벌이는 실세인데, 그를 만난 사람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정씨 스스로는 “7년간 야인이었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정윤회가 도대체 누구냐”고 묻고 있다.
증권가 루머를 모은 정보지를 일컫는 속칭 ‘찌라시’가 이번 사태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무척 이례적이다.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 문건이 폭로되자 청와대는 ‘찌라시 수준의 문건’이라고 해명했고, 박 대통령도 “찌라시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소통부재, 비밀주의가 만들어낸 사태라는 지적이 많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청와대 실세가 진돗개라는 둥, 문건이 ‘찌라시’ 모아놓은 거라는 둥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고 그런 말이 나오겠느냐”면서 “이런 게 총체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적폐”라고 비판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
[정치인사이드]비선실세 의혹,권력형 게이트와의 공통점 및 차이점
입력 2014-12-11 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