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퍼즐 맞춰지는 ‘정윤회 문건’ 수사 막바지 이른듯

입력 2014-12-08 17:44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의 발단이 된 ‘정윤회 문건’ 작성 경위의 ‘퍼즐’이 맞춰져 가고 있다. 이른바 ‘십상시(十常侍) 모임’을 최초 제보한 인물로 검찰이 박동열(61)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을 지목해 소환한 것은 문건 정보 출처를 역추적해온 수사가 막바지에 달했음을 뜻한다. 관련자들 진술이 여전히 엇갈리는 가운데 결국 제보자의 ‘입’이 문건 신빙성 여부를 가리는 중요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청장, ‘제보자’인가 ‘전달자’인가=검찰은 8일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48) 경정과 정보 제공자 박 전 청장을 나란히 불러 조사했다. 전날 박 전 청장을 1차 조사한 데 이어 두 사람을 다시 불러 대질신문까지 진행한 것은 핵심 지점에서 양측 진술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박 경정은 지난 4일 검찰에 나와 “믿을만한 정보원에게 들었다”면서도 최초 제보자를 특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초까지 박 경정의 통화내역 등을 분석해 박 전 청장을 유력한 제보자로 판단했다.

박 전 청장은 박 경정과 접촉한 사실과 일부 문건 내용의 출처가 자신이라는 점은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특히 ‘정윤회씨가 지난해 10월부터 매월 2회 정도 서울 강남의 모처에서 십상시 멤버들을 만나 VIP(대통령)의 국정운영, BH(청와대) 내부상황을 체크하고 의견을 제시했다’는 문건의 골격은 박 전 청장에게서 나온 정보로 보고 있다.

그러나 박 전 청장은 “당시 모임에 직접 동석하거나 목격하지는 못했고 제3자에게 들은 얘기 중 일부를 박 경정에게 다시 전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제보자라기보다 정보 전달자 역할만 했다는 취지다. 검찰 관계자는 “두 사람 진술 내용이 달라 진위 확인에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검찰은 박 경정이 ‘전언의 전언’을 토대로 문건을 작성했고 제보자 역시 ‘문건이 과장됐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에 비춰 문건 내용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박 전 청장에게 모임 정보를 전달한 제3자도 조만간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할 계획이다.

◇박 경정, 제보 검증 작업 있었나=박 경정은 해당 첩보를 입수한 뒤 청와대 안팎의 인사를 상대로 검증을 했다고 주장한다. ‘십상시’ 모임에 참석했던 한 명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세계일보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당시 첩보 수준인 ‘시중여론(추정)’이란 제목의 문서를 만들었다가 검증을 거쳐 ‘청 비서실장 교체설 언론보도 관련 특이동향’ 문서로 재가공했고, 이후 1월 6일자로 생산된 최종본을 작성했다고 보도했다. 이 문건은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을 거쳐 김기춘 비서실장에게까지 보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박 경정이 누구에게 탐문했는지, 어느 정도 정교하게 검증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이 문건을 확인 절차를 거친 ‘감찰 보고서’가 아닌 첩보 수준의 ‘동향 보고’라고 인식하고 있다.

◇‘정윤회 문건’ 왜 만들게 됐나=박 경정이 애초 문제의 문건을 왜 생산하게 됐는지도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다.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은 ‘지난해 말부터 김기춘 비서실상 교체설이 시중에 나돌아 소문의 근원지가 어딘지 추적하려 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문건에는 정씨가 ‘십상시’ 모임에서 ‘이정현(홍보수석)을 날릴 준비를 하라’ ‘김덕중 국세청장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 등의 발언을 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문건이 애초부터 정씨와 대통령 측근 ‘3인방’을 견제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은 박지만 EG 회장 측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