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건강해? 잘 울어? 그 작은 눈은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 둘 중에 누굴 더 닮았지? 수유는 누가 해? 배고프대? 아직 머리카락은 나지 않았겠지? 몸이 좀 괜찮아지면 얼굴을 좀 그려보내줘. 나는 그 애를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정말 사랑해!”
1902년 2월, 23살의 젊은 천재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애인 밀레바 마리치에게 보낸 편지는 그가 첫 딸 리제를을 얻고 얼마나 흥분하고 들떴는지 오롯이 보여준다. 훗날 아내가 된 밀레바와 딸은 세르비아에 있었고,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베른에 떨어져있었다. 이듬해인 1903년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이 머물던 스위스로 건너와 두 사람은 결혼했다. 하지만 딸 리제를은 성홍열을 앓은 뒤 다른 곳으로 입양됐다고 전해진다. 그가 딸을 만났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43세 때까지 아인슈타인의 삶을 보여주는 5000건의 자료가 독일어와 영어 번역본으로 5일(현지시간) 공개됐다고 보도했다. 공개된 편지와 일기, 연구노트 등에는 가족에 대한 그의 사랑이나 학자로서의 고뇌 등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스라엘 히브리대와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및 프린스턴대 출판사 등은 1922년까지의 자료들을 모아 디지털화했다.
17세 때 프랑스어로 쓴 에세이에서 그는 “행복한 사람은 미래를 연구하기보다 현실에 만족한다”면서 “하지만 나는 현실감이 떨어지고 추상적·수학적 사고를 하는 성향이 있다”고 표현했다. 나중에 이론물리학자가 된 것을 보면 스스로에 대한 분석이 정확했던 셈이다.
1912년 사촌 엘사 로벤탈에게 쓴 편지에는 사랑에 실패한 그의 좌절감도 보인다. 아인슈타인은 “진실된 사랑을 하지 못해 무척 괴롭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결국 그는 1916년 아내 밀레바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엘사와 재혼했다.
특수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지 10년이 지난 1915년 그는 일반상대성 이론을 세상에 내놓는다. 1919년 아인슈타인은 어머니에게 “이론이 검증을 통과해 6주 안에 그 결과가 공개된다”는 기쁜 소식을 편지로 전했다. 연구 결과로 이름이 알려진 뒤엔 동료에게 편지를 보내 유명세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아인슈타인이 애인에게 보낸 편지 공개… ‘천재의 사랑과 고뇌가 고스란히’
입력 2014-12-05 1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