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결혼식에 참석했다. 38세 노총각의 결혼식이다. 어느 재벌 그룹의 과장으로 근무 중인 인물 좋은 노총각이다. 신부는 매우 예뻤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를 띠고 주변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당당한 신부의 모습을 보면서 그 신부 참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신세대 신부는 다르다며 같이 간 사람들이 칭찬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미소와 자신만만한 표정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슬픔과 반항의 얼굴을 보았다. 웬일일까.
결혼식이 끝난 후 신랑의 아버지에게 “어떻게 저런 예쁜 며느리를 구하셨느냐”고 물었다. 몇 달 전 노총각 아들이 자신을 찾아와 “아버지, 며느리 보고 싶으시죠?” 하고 물었다고 한다. “당연하다”고 대답한 그에게 아들이 말했다. “그러면 제가 며느리를 데리고 올 테니 약속을 하나 해 주세요. 며느릿감을 만나면 가족, 학교, 고향 등 모든 것을 묻지 마시고 그냥 예쁘다고 두 번 씩 말씀해 주세요. 약속하시면 소개시켜 드릴게요.” 아버지는 별로 기분이 내키지 않았지만 그 약속을 지켰고, 오늘이 그 결혼식이라고 한다. 신부는 어느 그룹사의 마케팅 담당 직원이라고 한다.
결혼식 날짜를 왜 하필 주일로 정해서 교인들이 오기 힘들게 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며느리가 예식장도 날짜도 가격도 모두 결정하고 아들을 통해 자신에게 승낙을 받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아버지도 재벌 그룹 임원 출신이다. 그룹에서 한가락 하며 인사부장까지 지냈던 분으로 매우 똑똑하고 자존심이 강한 분이다. 이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신부가 똑똑한 것은 틀림없지만 상대적으로 신랑은 유약해 보였고, 아들의 혼사에 부모님이 아무런 역할도 없는 것을 보니 새내기 신부가 마음에 거슬렸다. “나이 들고 돈 못 벌면 다 이렇게 된다”는 그 아버지의 말을 들으니 내 가슴에 슬픔이 다가왔다.
마침 신랑이 내 옆에 앉기에 한마디 했다. “예식장에서 남자가 너무 웃고 다니면 공처가 된다.” 그러자 신랑은 그저 씩 웃고 만다. ‘공처가일지라도 아내가 월급을 많이 받으니 괜찮다’는 뜻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결혼 날짜와 예식장 등을 주관하는 결정권은 신랑 집 측에 있다는 내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학력 등 모든 것을 묻지도 않았고 모른다고 했다.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당한 신부의 모습에는 그동안의 사회 경력과 지혜로움, 건강함이 드러난다.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부모님에 대한 예의, 존경심, 그리고 가문의 한 사람으로 들어간다는 책임감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남자와 결혼하는 여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는 것 같았다. 내가 너무 과장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의문이 지워지지 않았다.
요즘은 입사 철이라 신입사원 면접을 많이 본다. 모두 똑똑하고 시험 성적도 좋다. 소위 말하는 ‘스펙’이 모두 뛰어나다. 어떤 사람에게는 ‘내가 좋은 학교를 다녔고 성적도 좋으니 당연히 내가 합격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웬만한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일을 하는 데에 있어 전혀 지장이 없다. 성적이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들어와 도움이 되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회사와 면접자의 생각에는 이런 차이가 있다.
인생은 똑똑하다는 이유만으로 인정받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구절이 있다. 그동안 이 구절을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며칠 전에 한 주석을 읽으며 깨달았다. 고대 중동 지방에 ‘뱀같이 지혜롭다’라는 속담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는 익숙한 속담이라 예수님께서 이를 인용해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혜와 지식이 많아도 이를 잘못 활용하면 교만해지고 더 나아가 남에게 피해를 주며 사기를 치는 사람이 된다.”
그 좋은 지혜와 지식을 가지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다만 비둘기같이 순결한 마음을 동반해야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 크리스천도 따뜻한 사랑, 비둘기같이 순결한 마음을 갖고 세상에 나아가면 세상을 이길 수 있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교회 안에서는 믿음이 좋다고 인정받는 좋은 교인이 될 수 있지만 세상에 나와서는 힘이 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살되 순결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바로 존경받는 사회의 리더가 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좋은 크리스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우리가 세상에서 당당히 그리스도인임을 말할 수 있는 좋은 크리스천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국유나이트문화재단 이사장, 갈렙바이블아카데미 이사장
[강덕영 장로 칼럼-종교인과 신앙인 (103)]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예쁘다고만 말해주세요
입력 2014-12-05 1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