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신의학으로 본 사도세자… ‘양극성 장애’

입력 2014-12-03 13:44
조선의 왕위계승 교육인 '회강'(會講)을 재현한 장면. 서울 창덕궁 영화당에서 공개된 조선의 왕위계승 교육 '성군을 꿈꾸다'에서 사도세자(오른쪽)가 영조(가운데)의 물음에 답하고 있다. 국민일보DB

뒤주에 갇힌 채 숨을 거둔 사도세자는 현대 정신의학 관점에서 ‘양극성 장애’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정신의학자가 사료를 바탕으로 사도세자의 병명을 진단하기는 처음이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창윤 교수팀은 사도세자의 언행이 상세히 기록된 한중록 등 문헌을 중심으로 정신의학적 건강 상태를 진단한 결과 양극성 장애로 판단된다고 3일 밝혔다. 양극성 장애는 과하게 기분이 들뜨는 조증과 가라앉는 우울증의 감정 상태가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질환으로 조울증이라고도 불린다. 김 교수는 이런 내용의 논문을 ‘신경정신의학’ 최신호에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13~14세(1748~1749년)에 우울증상, 불안증상과 함께 환시(일종의 환각증세) 같은 정신병적 증상을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17~19세(1752~1754년)엔 경계증(잘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으로 불리는 불안증상이 이따금 있었던 것으로 관찰됐다. 20~21세(1755~1756년)에는 우울감, 기분과민성, 흥미 저하, 의욕저하를 보이며 자기관리도 소홀히 하는 등 기분장애로 인한 정신기능 저하가 동반됐다. 자살생각과 함께 실제 자살행동도 나타났다. 연구팀은 사도세자가 “아무래도 못 살겠다”며 우물에 투신하려 했던 이 시기를 우울증 소견으로 진단했다.

특히 21세 때 6~7월에는 처음으로 조증으로 볼 수 있는 고양된 기분, 기분과민성, 난폭한 행동이 나타났다. 조증은 8월에 다소 호전됐다가 9월에 다시 악화되거나 우울증으로 바뀌는 양상을 보였다. 22세 때 6~9월에는 폭력적이고 충동적인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판단력 저하와 함께 부적절한 행동을 지속한 것은 조증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증상은 23~24세(1758~1759년)에 잠시 나아졌다가 25~26세에 다시 재발해 폭력적 행동이 두드러졌다. 부적절한 언행과 강박증상, 피해의식에 따른 환시 등 정신병적 증상도 의심됐다. 이후 26세 때인 1761년 10월부터 1762년 5월 사망할 때까지 조증과 우울증 증상을 번갈아 보였던 것으로 연구팀은 분석했다.

또한 사도세자의 정신 이상에 가족력이 관찰됐다. 김 교수는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가 기분장애 증상을 겪다 자살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봤다. 영조의 이복형제 중 희빈 장씨의 아들인 경종이 우울증상이나 정신병적 증상을 앓았던 것으로 진단했다. 숙종은 정상의 범주 내에서 다소 감정 기복이 있는 성격으로 파악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