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2년만의 내년도 예산안 법정시한 내 처리를 주도한 ‘공(功)’이 느닷없는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파문에 다 가려져버렸기 때문이다.
여야가 2일 2002년 이후 처음으로 예산안 국회 의결시한(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을 준수하자, 새누리당에서는 ‘헌정사를 다시 쓰는 날’(새누리당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이 ‘오랜만의 경사’는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의 덕이 컸다. 2012년 5월 국회법에 신설된 ‘예산안 등 본회의 자동부의’ 조항이 올해부터 시행되면서 야당이 예산을 볼모로 잡아 국회일정을 보이콧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다음날 정부 예산안이 본회의에 부의되도록 돼 있어서다. 국회 과반 의석(158석)을 갖고 있는 새누리당은 소속 의원 50명 이상이 동참해 정부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을 제출하면 본회의에서 이를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 야당 입장에선 정부안을 그대로 받거나, 여당의 수정안이 처리되도록 손 놓고 있을 바에야 어떻게든 협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새누리당은 선진화법의 또 다른 축인 ‘직권상정 요건 제한’과 ‘쟁점법안 5분의 3 의결’ 규정 때문에 야당의 협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컸다. 국회법 개정에 앞장섰던 새누리당 내부에서 ‘국회선진화법이 아니라 국회마비법’이라는 비판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예산정국에서만큼은 달랐다. 예산안마저 기한 내 처리하지 못하면 선진화법의 존재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한 당직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 결승점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면서 “정윤회씨 사건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언론과 국민의 시선이 온통 예산 처리에 쏠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여의나루]여권의 한숨…정윤회 논란에 가려진 예산안 법정 기한 내 처리
입력 2014-12-02 1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