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진화법(개정 국회법)에 따른 예산안 자동부의제도가 처음 시행되면서 연말마다 국회서 목격됐던 본회의장 점거 등의 구태가 자취를 감췄다. 다소 진통은 있었지만 여야는 합의를 통해 기한 내 예산안 처리를 12년 만에 이뤄냈다. 국회선진화법이 정착될 경우 새해 예산안의 법정시한 내 처리가 국회의 관행으로 자리 잡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여야, 12년 만에 예산안 제때 처리=예산안 법정 처리시한 마지막 날인 2일 국회는 오전부터 긴장감이 가득했다. 여야의 막바지 신경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와 안규백 원내수석부대표 등은 오전 11시20분 ‘2+2’ 회동을 통해 막판 절충에 나섰다. 이 원내대표는 회동에 앞서 “(오늘) 해가 떠 있을 때 국회에서 예산안과 부수법안을 함께 처리하는 모습을 국민께 보여 드리고 싶은 게 희망사항”이라고 했다. 반면 우 원내대표는 “법정기한을 지키는 것이 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예산안에는) 야당의 요구뿐 아니라 국민의 요구도 담겨 있다. 여당이 너그럽게 많은 것을 수용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수법안 처리 등을 놓고 벌인 양측의 ‘기 싸움’은 예상보다 치열했다. 배당소득 증대, 신용카드 소득공제 일몰 연장, 소규모 주택임대소득 비과세 등 ‘가계소득 증대세제 3대 패키지’ 법안이 발목을 잡았다. 여야 원내대표단은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실에서 짜장면을 시켜먹으며 협상을 이어갔지만 최종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안 원내수석부대표는 조세소위 파행에 대한 새누리당의 유감 표명을 요구하다 회동 15분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양측은 오후 1시30분쯤 일단 기획재정위원회 여야 간사에게 세법 개정안 협상 권한을 넘겨 추가 타협점을 모색한 뒤 2차 회동을 열어 가까스로 최종 합의안을 만들었다. 오후 2시 예정이던 본회의는 2차례나 연기됐다.
◇국회선진화법으로 달라진 국회=국회선진화법은 연말 예산정국에서 위력을 발휘하며 여의도 정치를 바꿔 놨다. 정치권이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에 대한 심사를 11월 30일까지 끝내지 못하면 정부안이 본회의에 자동으로 부의 되도록 한 조항 때문이다.
예산안 처리 절차가 명문화되면서 무엇보다도 여야 원내지도부의 역할이 막중해졌다. 그동안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줄다리기하며 정부 예산안의 증·감액 규모를 결정했다. 국회선진화법으로 11월 30일 예결위 심사권이 종료되면서 상임위가 합의하지 못한 민감한 사항을 여야 지도부가 협상하게 되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예산부수법안을 지정할 수 있는 국회의장 권한도 막강해졌다.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되면 상임위 단계의 합의에 실패해도 법안을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심사 기능은 약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야는 비공개 회동을 통해 예산안 최종 수정동의안을 만들었다. 결국 내년도 예산안이 최종 바뀌는 내용을 본회의 통과 직전까지 양당 지도부만 알았던 셈이다. 부수법안 심사도 서둘러 종료하다 보니 내용을 제대로 따져볼 여력도 없었다. 국회는 당초 예산안 심사 시간을 벌기 위해 국정감사를 전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로 나눠 실시할 계획이었지만 ‘세월호 특별법’ 정쟁을 벌이다 이 시간을 다 까먹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달라진 여의도 국회 풍속도
입력 2014-12-02 1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