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정식품 대리점을 운영하는 A씨는 2011년 1월부터 ‘집중관리 품목’이라는 것을 받아왔다. 집중관리 품목은 부산지역 대리점을 관리하는 부산 영업소가 매달 내려 보낸 것으로, ‘검은콩깨두유’ 등 타사와 경쟁이 치열한 제품이나 해당 시기 신제품 등 10여개 목록과 할당량이 적혀 있었다. 목표 할당량은 적게는 5박스에서부터 많게는 143박스에 달했다. 영업직원은 A씨에게 할당량만큼 무조건 사라고 했다. ‘집중관리 품목’은 ‘밀어내기’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할당량만큼 팔 자신이 없어 A씨가 주문을 적게 낸 달에는 영업사원이 마음대로 주문 수량을 늘려 주문을 해 놨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떠안은 물량은 다 못 팔면 반품도 안돼 폐기처분하거나 덤핑으로 넘어갔다.
식품업계의 ‘대리점 밀어내기’ 관행이 또다시 경쟁당국의 제재를 받았다. 남양유업, 국순당에 이어 이번엔 ‘베지밀’로 유명한 두유 업계 1위 정식품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리점에 제품 구입을 강제해 온 정식품에게 과징금 2억3500만원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고 1일 밝혔다. 정식품은 전국 두유 시장 점유율이 43.7%로 업계 1위다.
공정위에 따르면 정식품 부산 영업소는 매월 집중관리 품목을 10~14개 선정하고 각 제품별로 할당량을 정해 관할 35개 대리점에 그 이상을 구입하도록 강요했다. 밀어내기 관행은 2011년부터 2013년 6월까지 계속됐다. 대리점주가 할당량보다 적게 영업소에 주문하는 경우에는 영업사원이 임의로 주문 수량을 할당량 이상으로 바꿨다. 대리점주의 주문 수량과 상관없이 영업소가 할당량만큼 출고하기도 했다. 두유 시장에 2000년 매일유업과 연세우유 등이 진입하면서 매출이 떨어지자 영업소가 대리점에게 물건을 떠넘긴 것이다.
대리점주들은 이렇게 떠넘겨진 제품을 다 팔지 못해도 반품하지 못했다. 본사 측이 반품 불가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결국 제값을 받지 못하고 덤핑 처리하거나 아예 박스째로 버리기도 했다.
정식품은 이번 공정위 제재를 계기로 대리점주의 주문을 영업직원이 임의로 바꿀 수 없도록 주문 시스템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앞서 2006년 남양유업은 같은 사안으로 공정위로부터 시정조치를 받았으나 개선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가 지난해 공정위로부터 12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고, 법원에서도 1억20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국순당은 지난해 도매점 밀어내기가 적발돼 과징금 1억원 및 시정조치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은 1일 국순당 회사법인과 배중호(61) 대표이사, 조모(54)·정모(39)씨 등 전현직 간부 2명을 공정거래법과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
17면/지금도 여전한 ‘대리점 밀어내기’ 관행-공정위 '정식품' 철퇴
입력 2014-12-01 1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