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지상군 규모가 남한을 능가한다’는 미 육군의 36년 전 보고서가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를 백지화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30일(현지시간)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미국 비영리기관인 ‘국가안보기록보존소’가 중앙정보국(CIA)에 기밀해제를 요청해 최근 공개한 내부 사례연구집을 통해 드러났다.
주한미군 철군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지미 카터(사진) 전 미국 대통령은 1977년 취임 직후 각 군에 철군방안 검토를 지시했다. 카터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남북한이 군사력 균형을 이뤘다는 미국 정보기관의 평가에 따라 철군은 현실화되는 듯했다.
이 때 미 육군 특별조사대 소속 존 암스트롱이라는 대북 정보담당관이 등장했다. 2년여 대북정보를 전담한 암스트롱은 위성사진 판독을 통해 1976년 9월 북한군의 탱크 수가 당초 알려진 것보다 80% 이상 많고 새로운 탱크 사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어 그동안 북한군 편제표에 없었던 3개 사단과 1개 여단이 새롭게 확인됐으며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지상군 규모는 한국이 앞선다는 기존 미국 정보기관의 판단과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다.
이후 암스트롱을 중심으로 꾸려진 대북 정보 특별팀은 1978년 북한 지상군 숫자가 최대 65만명에 달하고 사단 숫자 역시 알려진 28개가 아니라 41개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스탠스필드 터너 CIA국장을 통해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보고됐다. 백악관 참모 중 유일하게 철군을 지지했던 브레진스키는 당시 터너 국장이 “심각한 파장을 낳을 심각한 보고서”를 들고왔다고 회고했다.
암스트롱 보고서 내용은 1979년 1월 ‘아미 타임스(The Army Times)’라는 국방전문지에 누출됐고 주류 언론들도 앞다퉈 이를 보도했다. 주한미군 철군론을 뒷받침해온 근거가 무너지면서 여론은 철군반대 쪽으로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다.
카터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고립됐고, 1979년 2월9일 상원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철군 보류결정을 공식 발표하게 됐다고 사례연구집은 밝혔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
“암스트롱 보고서가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론 뒤엎었다”
입력 2014-12-01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