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국전력 나주에 새 둥지 ‘빛가람 혁신도시 시대’ 개막

입력 2014-11-30 17:36

한국전력이 1일 나주 ‘빛가람 혁신도시 시대’를 활짝 열었다. 30일 찾아간 혁신도시 인근 주민들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청신호가 켜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내부 공사를 마감하고 문을 연 식당과 상가들로 손님맞이에 들떠있는 분위기였다. 유명브랜드의 아웃도어 매장 등 의류매장 등도 속속 입점하고 있다. 한전 새 사옥 근처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최모(55)씨는 “벌써부터 주문이 밀려 들어 일손이 턱없이 부족할 정도다. 혁신도시 초반에 손님들을 사로잡기 위해 서비스와 품질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초거대 공기업 이전으로 지역이 들썩들썩=한전은 1986년부터 28년 동안 서울 삼성동에 자리잡고 있던 본사를 전남 나주시 금천면과 산포면에 걸쳐 733만4000㎡ 부지에 조성된 빛가람 혁신도시로 이전하고 이날부터 새롭게 문을 열었다.

한전의 나주행은 이동 직원 수 등을 감안할 때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사례 중에서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매출과 자산 기준으로 한전은 호남에서 가장 큰 국내기업이 된다. 1500여명의 한전 임직원들 연봉 총액이 1163억원으로 계산되고, 한전KDN과 한전KPS, 한국전력거래소 등 자회사 임직원들의 연봉까지 합산하면 그 규모가 무려 2370억원이 된다. 나주시 1년 예산인 5300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몸집이 큰 공기업이다보니 이전 작업 자체가 큰 사업이었다. 이사는 지난 7일부터 23일간 진행됐다. 5t 트럭 835대가 동원됐고, 총 이사비용은 94억원이 들었다. 이사 과정에서 신경을 가장 많이 쓴 부분은 주요 설비의 안전한 이송이었다. 송·변전 제어시스템과 내부 포털시스템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와 관련이 있는 1228대의 서버는 충격흡수 장치가 탑재된 무진동 차량 30대를 동원해 옮겼다.

한전 관계자는 “전력 ICT 설비의 이전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며 “주말과 야간마다 모의훈련을 수차례 실시했다”고 소개했다. 또 “실제 이전을 할 때는 서울 및 전남지방경찰청, 고속도로 순찰대 등의 호위를 받으며 교통량이 가장 적은 새벽에 이동했다”고 말했다.

한전의 새 본사 건물은 지하 2층~지상 31층(154m) 규모로 6750㎾의 신재생 에너지 설비를 보유하고 있는 에너지 생산형 빌딩이다. 연간 2300만㎾h의 전력을 생산해 빌딩 에너지 자급률 42%를 달성한다는 게 목표다. 한전은 “에너지 소비형 건물에서 에너지 생산형 건물로 본사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모범사례를 구현했다”고 평가했다. 최고층의 스카이라운지와 지상 1층의 디지털 도서관, 1000석 규모의 강당, 신재생 에너지 전시 시설 등은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된다.

한전은 나주로 이전하면서 전력산업에 특화된 창조경제 혁신 구역인 빛가람 에너지밸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산·학·연 연구개발 분야에 100억원 이상을 투자하고, 신재생 에너지와 에너지 저장장치, 전기차 등 유망 신산업 분야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해 나가기로 했다. 아울러 지자체와 함께 에너지 관련 기업 100개를 이 지역에 유치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중소기업과 함께 에너지 신산업 분야의 제품 개발에서부터 수출까지 협력하는 상생형 사업 모델을 구축해 강소기업 육성에도 힘을 쏟기로 했다.

◇“버릴 것 버리고 과감히 새 출발”=‘신(神)의 직장’이라고 불리며 비난받던 공기업들도 혁신의 바람에 직면하게 됐다. 지방 이전은 그 변화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다. 수도권의 알짜배기 부지를 매각해 과다한 부채를 해소하고, 지방 균형 발전을 실현해 이미지 개선에 나서겠다는 취지다. 임직원들의 마음가짐을 다잡는 계기도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 조환익 사장은 최근 임직원 전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한 곳에서 고인 물처럼 썩어져 가던 적폐, 고정관념, 편견 등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새 출발을 하자”고 주문했다.

올해 들어 에너지 관련 공기업들의 지방 이전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3월 한국남동발전이 경남 진주시로 본사를 옮겼다. 7월 한국동서발전이 울산으로 옮겼고, 10월에는 한국남부발전이 부산으로 이전한 데 이어 이날 한전이 나주시로 이주했다. 한국중부발전은 내년 1월 충남 보령시로, 한국서부발전은 내년 6월 충남 태안군으로 둥지를 옮긴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내년 말 경주시에 신사옥을 건립하고 본사를 이전할 계획이다.

◇지역경제에 활력 제공=한수원은 “새 본사를 경주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디자인해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만들겠다”며 “불국사의 단아하고 안정적인 분위기, 신라 왕릉의 곡선과 탑의 수평적 이미지와 수호신 주작을 형상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수원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본사 사옥 하도급 공사에 지역 업체 참여를 확대하고, 현장에 필요한 인력을 채용할 때 지역 주민을 우선적으로 고용할 방침이다. 또 지역 업체의 장비와 자재를 공사 현장에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지역의 각종 행사에 적극 참여해 시민사회와 스킨십을 강화해나가고 경주 문화탐방 프로그램도 추진해나갈 생각이다.

진주시로 옮긴 남동발전은 주민과의 유대감 강화라는 새 목표를 세웠다. 담장을 없앤 ‘울타리 없는 사옥’을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회사 내부가 산책로를 통해 외부와 연결돼 있다. 곳곳에 의자도 놓고, 테니스장 등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시설도 만들었다.

지역 중소기업과의 상생 협력도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기업들의 주요 청사진이다. 중부발전은 지난 8월 보령·서천지역 중소기업 50개사와 함께 ‘상생발전을 위한 정책 설명회 및 중소기업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발전소 주변 지역의 발전 산업 및 연관 산업 현황을 점검했고, 보령·서천지역을 발전산업 클러스터화한다는 구상을 마련했다.

진주로 이주 예정인 LH는 사회 취약 계층의 복지 향상과 자활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임대주택 주민을 위한 ‘마을형 사회적 기업’ 설립 지원이 대표적이다. 임대단지 안에 작은 기업을 설립해 입주민을 비롯한 인근 취약 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2010년 경기 시흥시 능곡, 충북 청주시 성화, 대구 율하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총 16개의 마을형 사회적 기업을 설립했다.

유성열, 나주=김영균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