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문건 검증 제대로 했나-의문점 국민 설득 필요할 듯

입력 2014-11-30 16:52

청와대가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 문건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밝히며 수사의뢰까지 하는 등 강공에 나섰지만 보고서 검증과 청와대의 처리 과정에는 의문점이 여전히 남아있다.

우선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 근무하던 박모 경정이 지난 1월 작성한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측근(정윤회) 동향’ 보고서의 진위 여부를 청와대가 제대로 검증했는지 여부다. 청와대는 이 보고서를 “찌라시(증권가 정보지) 수준의 풍설을 모아놓은 문건”이라고 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관련내용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구두로 보고됐고, 특별한 (사후)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문건 사실확인 작업은 거쳤다”고 했으나, 실제 강도 높은 조사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십상시(十常侍)’로 거론된 당사자들에 대해 구두로 물어본 수준이라는 얘기다. 공직기강비서관실 감찰 담당 행정관이 보고한 내용을 감찰 대상인 당사자들에게 사실관계만 확인한 뒤 허위로 판단했다는 말이 된다. 실제로 청와대는 이 문건의 진위에 대해 추가로 진상 파악을 하진 않았다고 인정했다.

보통의 경우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비위 또는 이상동향을 포착하면 해당 공직자에 대해 통화기록 조회는 물론 현장조사까지 하는 게 관례다. 이런 관례에 비춰보면 검증 자체가 너무 허술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이 사안이 김 실장에게까지 보고될 정도로 주요사안인데, 이를 당사자 확인만으로 넘겼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십상시에 이름이 거론되는 한 인사는 30일 “(정씨)를 본 적도 없다. 문서 내용은 모두 풍문을 짜깁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비서관과 청와대 안팎의 인사들이 10명씩 외부 인사와 함께 모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씨 감찰 여부에 대한 청와대 해명도 미묘하나마 조금씩 바뀌고 있다. 청와대는 이 문건이 공개되기 4일 전인 지난 24일 ‘청와대가 정씨 감찰을 돌연 중단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자, “민정수석실에서 정씨를 감찰한 바 없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공직자 감찰이 임무이고 정씨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러나 정씨 국정개입 관련 문건이 나온 뒤인 28일에는 “(해당 문건과) 유사한 문건이 있다”고 말을 바꿨다. 비록 ‘공식 감찰’ 수준은 아니지만 동향파악 정도는 해왔다는 의미다.

민간인 신분인 정씨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감찰 또는 동향파악 대상이 되느냐에 대한 논란도 있다. 아무런 공직을 맡지 않고 있는 정씨 동향을 파악했다면,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반론도 존재한다. 대통령 친인척이나 측근 동향을 조사하는 것도 민정수석실 임무인 만큼 오랜 기간 박근혜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냈던 정씨에 대해서도 동향 파악 정도는 가능하다는 얘기다.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공직자, 공공기관·단체장 외에도 대통령 친족 및 특수관계인 사람에 대한 동향 파악이 가능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정씨가 박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함께 했던 만큼 감찰 또는 동향 파악은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찌됐든 관련 문건이 유출됨으로써 정씨를 둘러싼 의혹은 이제 정치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은 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다. 회의 때마다 모두발언 등을 통해 국내 현안 관련 언급을 해온 만큼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힐지 주목된다. 박 대통령이 회의에서 공직자들의 기강 확립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검찰의 엄정한 수사와 야당의 정치공세 중단 등을 촉구할 가능성도 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