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이집트 시민혁명 과정에서 시위대 800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호스니 무바라크(86) 전 이집트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수도 카이로에서 대규모 시위에 나서면서 이집트 정국이 다시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군 출신인 현 집권 세력이 무바라크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외신들에 따르면 카이로 형사법원은 파기환송심 선고에서 무바라크와 치안 관계자 6명의 2011년 초 시위대 유혈 진압 관련 혐의들을 전부 기각했다. 법원은 또 무바라크가 이스라엘에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부패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무바라크는 공적자금 횡령으로 지난 5월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적이 있어 이번 무죄 판결로 즉각 석방되지는 않았다. 검찰은 항소할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재판 결과가 나오자 시민 2000여명이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타흐리르 광장은 3년 전 시민혁명을 이끌어냈던 ‘민주화의 성지’였다. 영국 BBC 방송은 “시위가 당시 혁명을 연상시켰다”고 전할 만큼 격렬했다. 시위에서는 2011년 혁명 당시 나왔던 “정권 퇴진을 원한다”는 구호가 다시 등장했다.
이에 군경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와 충돌했고 이 과정에서 시위 참가자 1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재판 뒤 이집트 언론과 인터뷰에서 “나는 전혀 잘못한 게 없다”며 “2012년 1심 선고(종신형)를 들었을 때 어이가 없어 웃어버렸다”고 말했다. 또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무바라크는 현재 카이로 시내 한 군 병원에 구금돼 있다.
이번 판결로 이집트가 구체제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집트는 민주화 시위로 무바라크가 축출된 뒤 2012년 6월 대선을 치러 이슬람주의 세력의 지지를 받은 무함마드 무르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하지만 현 대통령인 압델 파타 엘시시가 지난해 7월 쿠데타로 무르시 정권을 축출하고 지난 6월 선거를 다시 치러 권좌에 앉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슬람주의자들이 경제난과 인권탄압에 반발해 반정부 시위를 계속 벌이면서 무르시 정권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에 무르시 정권이 여전히 막강한 무바라크 지지 세력을 껴안고 이슬람주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무바라크에 무죄를 선고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이집트 다시 시끄러워지나… 무바라크 무죄선고에 대규모 시위, 1명 사망
입력 2014-11-30 15:41 수정 2014-11-30 15:42